흘리지 않는 믿음

경주에 살던 어느 한국인 신부님의 이야기이다. 유달리도 전통문화를 좋아하고 불교의 교리와 상식에도 깊은 이해가 있었던 이 신부님은 특히 석굴암을 좋아하여 토함산을 자주 오르내렸다. 그리고 한가한 날이면 유적지를 찾아 그 아름다움 속에 스민 겨레의 얼을 체감하는 것이 낙이었다.
그래서 누구나, 이 고령의 신부님을 좋아해서 스스럼없는 스님친구도 많았다. 이 신부님의 복식은 특색이 었었는데 그다지 성직자 티를 내지 않고 수수하고도 범상하게 차리어서 그 언행만큼이나 격의 없었다. 자전거를 타거나 걷거나 이 신부님이 다닐 때는 한가지 특이한 차림이 있는데, 그것은 허리 쯤에 조그만 주머니 하나를 차고 다니는 것이었다. 그 주머니 속에는 조그만 다관과 찻잔이 들어 있었고 또 그 주머니 바깥쪽으로는 아주 작은 주머니가 여러 개 매달려 있어서 그 안에 차잎을 종류별로 조금씩 넣어두었다.
길을 가다가도 그럴듯한 곳에 이르르면 그 신부님은 홀로 불을 지피고 물을 끓이어 차를 마셨다. 또 반가운 친구를 만나면 길거리에서도 유유하게 물을 끓이고는 나무 등걸이나 돌멩이 위에 걸터앉아 이야기와 함께 차를 나누었다. 사찰의 복원이 본래의 맛을 잃고 격식을 잃어버리면 불자들보다도 더 서운해 했고 경주 남산의 불상이나 탑이 훼손되면 그처럼 안스러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어버린 그 분의 이야기는 생각할 때마다 심금을 울린다.
집안의 어르신네 같고 자상한 스님같은 정말로 존경스러운 그 분을 생각하며 오늘의 신앙인들이 어떠한 믿음의 행로를 걸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특히, 포교 일선에서 자기 종교의 홍포를 위해 첨예한 대립을 벌이고 있는 기독교와 천주교 그리고 불교인들의 갈등은, 그 수많은 배척과 믿음의 언설 속에서 이 땅에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를 반추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을 ‘종교의 공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공해는 질시와 이기의 검은 비가 되어 집안의 화목을 가르고, 사회의 질서를 흔들고, 겨레의 혼을 흐트러뜨리며 우리 스스로의 삶에 간난의 궤적을 남긴다. 그 피해망상적 미움은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우리의 등을 찌르고, 그 우월적 대립의식은 이 땅의 겨레에게 계급과 파별의 오랏줄을 내린다.
혹시 나는 그러한 공해의 ‘원인’이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두려워진다. 나는 그러한 공해에 중독이 되어 만성이 된 마약환자처럼 아무런 부끄러움이나 자각 없이 살고 있지는 않은가. 저 잔등 굽은 늙은 신부님이 토함산 오르막길에 피운 차의 향기같은 그런 해맑은 믿음의 생활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나에 있어서 믿음의 독소는 무엇이며 또한 얼마만큼일까.

오늘날 우리에게는 너무도 뜨거운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정치사회가 그러하고 경제구조가 그러하고 종교운동이라고 빙자되는 신앙의 질곡 등이 사막의 열기처럼 가슴을 답답케 하고 있다.
신에 대한 믿음은 있을지나 인간에 대한 믿음은 퇴색하고 교리에 대한 논의는 있으나 삶의 가치를 이끄는 ‘인간의 길(道)’에 대한 공부는 소홀하다. 어느덧 우리 주위 도반들의 모습도 무엇이‘힘’인가를 추적하는 큰 흐름 속에 젖어들고 있다. 지식의 실력이 힘이고 돈의 축척이 힘이고 무리를 지어 소리를 높이는 것이 힘이 되어가고 있다. 예의는, 덕은, 그리고 소리없이 뒤에서 밀어주는 보존의 가치는 늙으신 어른들에게서나 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믿음의 길에 들어선 지 20년, 그 오랜 세월 속에 지난날 인간적 믿음의 모습들은 사라지고, 사회물리적 힘에 대한 믿음으로 변색하는 자신과 주위의 언행에 짜증을 내는 것은 비단 나만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
그 힘에 대한 믿음의 행로는 한가지 공통의 모양이 있다. 그것은 새로운 시대를 창출한다는 명분 속에 구습을 불식한다는 모양새이다. 보다 많은 신도를 유치하기 위해 피아노와 함께 하는 간이의식, 암자를 오르기 위한 차 길, 신앙적 수련 과정보다는 지식전달의 강의 중심 법회 등이 겉모양의 변화라면 자기 신앙이 타 종교보다 뛰어나다는 우월성에 대한 욕구, 어떻게 빨리 교리지식을 습득할 수 있을까 하는 인스탄트 수행적 지식욕, 지난날의 어버이식 믿음에 대한 경시 풍조 등은 내부적 변화라고 할수 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믿음의 길에 들어선 것은 도반이 좋고, 스승이 좋고, 그 풍토와 믿음의 차림새가 마음에 들어서일지도 모른다. 이제와 같이 바쁘고 불편하고 짜증을 주는 믿음의 모양이었다면 20년 전 그처럼 좋아서 쫓아다녔을까.
이제 흘리지 않을 만한 믿음의 자리와 나이를 얻고 보니 그 돌아가신 경주의 신부님과 함께 남산의 불상을 돌며 차 한잔 얻어먹었으면 하는 그리움이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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