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연중 행사와 민간의 세시풍속을 대비 분석하면서 동시에 그 상호 영향 및 습합 형태에 관해 논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구나 그것을 민중의 삶을 중심으로 하여 분석하면서 오늘날의 대중 포교의 방식에 한 도움이 되게 하려는 것은 애당초 무리인 듯하다. 왜냐하면 봉건 시대 농어민 대중의 총체적 삶에 대한 연구는 무척 미흡하며, 동시에 일제의 관변학자 및 서양의 제국주의적 침탈의 첨병 노릇을 한 인류화 등의 방법론과 시각을 주체적으로 극복해 내지 못한 오늘날의 학문에 의하여, 그 실체가 왜곡되거나 평가절하당해 왔기 때문이다. 또 불교와 민속을 더불어 총체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도 거의 없을 뿐더러 그연구 성과도 자못 정태적인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회에서 언급했듯이 불교의 생존과 관련하여 가장 시급한 과제인 대중 포교, 즉 대중의 삶과 마음 속에 불교를 뿌리내리는 실천적 요청을 감안해볼 때 기존 연구 성과의 미비만을 거론할 때는 지난 듯하다. 오히려 기존 연구 성과를 정확히 점검함으로써 민중불교의 역사적 실체 규명을 촉구하면서 동시에 대중 포교의 실천 속에서 방향을 찾아야 할 때라고 하겠다. 본고에서는 먼저 민간의 세시풍속에 관해 개괄적으로 서술한 다음 불교와 민간 세시풍속의 역사적 관계를 조감함으로써 현재의 대중 포교 운동에 한 도움이 되고자 한다. 민간의 세시풍속에 관한 연구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대별될 수 있다. 첫째는 단순 나열의 서술 방식이다. 이는 경도잡지(京都雜志),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등의 옛 문헌과 근래의 민속학자들의 정리, 그리고 최근의 현장 답사를 통한 민속보고서 등에 일관되는 방식이다. 둘째는 최근 소장 민속학자나 인류학자들에 의한 기능주의적 분석 방식이다. 이는 종래의 단순 서술의 한계를 극복하여 세시풍속을 포함한 민속의 창조적, 역동적, 통합적, 중심적 기능에 관해 새롭게 조망해 주는, 진일보된 연구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위 두 가지 연구 방식은 모두 민중적 삶의 토대, 죽 노동, 생산력, 생산 관계, 계급 갈등, 사회 변동과 민속의 관련을 해명해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두 연구가 모두 세시풍속에 관해 서술하면서도 생산 노동자로서의 농어민 대중의 실제적 삶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는 데서 단적으로 증명된다. 그러나 이 세번째 연구 방식에 의한 성과는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여, 본고에서는 세번째 연구 방식에 근접한 일부 연구 성과를 근간으로 하면서, 첫째와 둘째 방식의 성과도 참조하여 개괄적으로 세시풍속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대저 민속은 민중와 삶, 특히 생산 노동이나 생산물과 관련된 습속 내지 신앙을 중심으로 하여 개인이나 가족 혹은 마을 등 단위 공동체의 생존 및 행 ·불행과 관련된 행위 체계와 신앙 체계의 총체를 일컫는다. 그 중에서도 소위 세시풍속으로 일컬어지는 연중 행사는 특히나 생산 노동 및 생산물과의 관련이 두드러진다. 그것은 한민족이 일찌기 수도재배(水稻栽培)를 중심으로 한 농경 문화를 정착시켰기 때문이다. 더우기 벼의 원산이 본래 열대 지방이기 때문에 아열대나 온대 지방에 벼를 이식·재배하면서 자연 조건에 맞는 고도의 기술을 개발해야 했고, 또 험난한 자연 조건 때문에 매우 복잡한 생산 의례를 치루어야 했다는 점은 한민족의 농경 문화의 특색을 추출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또 논농사 외에도 밭농사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는 점, 유교·불교·도교 등의 심층적 침투 등에 의해 행위나 의례 체계 및 신앙 체계가 무척 복잡해졌다는 점도 중시되어야 할 것이다. 정초(正初)는 사계의 구별이 분명한 농경 문화권에서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 시기이다. 이 사기는 농경민에게는 반복되는 주기적 삶의 새로운 출발점일 뿐만 아나라, 한해 농사의 풍흉을 나름대로 예측하고 풍농을 기원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따라서 무척이나 다양한 민속이 전승되어 왔으며, 한해 민속의 태반이 이 시기에 몰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기의 세시풍속은 풍농을 기원하는 유감주술적(類感呪術的) 행사, 풍농을 점(占)쳐 보는 행사, 농신(農神)을 모시고 풍농을 기원하는 행사 등으로 구분될 수 있다. 먼저 풍농 기원의 유감주술적 행사는 궁중에서 행해지던 가농작(假農作)과 민간의 낟가릿대(禾竿)를 들 수 있다. 가농작 혹은 내농작(內農作)은 원래 농가에서 행해지던 풍속이었던 것이, 정책적으로 농사일을 권장하면서 궁중에서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동국세시기에 “소년들이 새벽에 가농작물(假農作物)의 주위를 돌면서 해가 뜰 때까지 노래를 불렀다”고 한 기록과, 그보다 더 정교하고 예능적으로 시행된 궁중 행사의 기록 등을 대비해 봄으로써 추측할 수 있다. 민간에서는 정월 13~15일 사이에 소나무 등을 베어다 마당 한 복판에 세우고 그 위에 짚을 묶어 쌓아서 깃발처럼 만든 후 벼·조·피·기장 등의 이삭을 꽂은 뒤 2월 1일 아침 이 볏가릿대를 철거하면서 각 농작물의 풍작을 기원하는 의례가 정착되었다. 풍농을 접쳐보는 세시풍속은 직접적인 점(占)과 간접적인 점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직접적인 점은 천체(天體)·곡물·짐승 등을 이용하여 그 해의 풍흉을 짐작하는 것으로서, 달맞이 · 월점(月占) · 달불놀이 · 들불놀이 · 우점(牛占), 또 키를 엎어 두었다가 거기에 묻는 곡물로써 풍작물을 점쳐 보는 민속 등이 있다. 간접적인 점은 주로 모의 전투의 승부를 보고 풍흉을 예측하는 것으로서, 석전(石戰)·줄당기기(索戰) ·차전(車戰) ·거화전(炬火戰) . 다리밟기(踏橋)·소머리대기(木牛戰) 등이 있다. 지역에 따라 행사 시기와 내용에 있어 편차가 있으나 모두 다 농사의 풍흉을 점치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결속과 안녕을 목적으로 하는 축제적 놀이라고 할 수 있다. 농신(農神)을 모시고 풍농을 기원하는 의례는 지역에 따라 시기·명칭 ·내용이 다르나, 일단 마을굿으로 정리하고자 한다. 이 마을굿의 신격(神格)은 매우 다양하여 마을을 처음 개척한 입향(入鄕) 시조신, 임경업 · 남이장군 · 공민왕과 같은 인격신, 자연신, 국조신 등이 있으나, 이들은 모두 마을을 지켜 주는 수호신으로서의 기능과 생산의 풍요를 보장해 주는 생산신으로서와 기능을 동시에 갖고 있다. 마을굿은 거의 예외없이 이러한 신격을 모시고 풍농을 기원하며, 마을과 각 가정의 안녕을 비는 ‘대동제의’와 굿을 치루는 전후의 민주적 ‘대동회의’, 그리고 ‘대동놀이’로 이루어진다. 이 마을굿은 특히 풍농을 기원하며 노동력을 예비 ·재생산한다는 기본 목적 외에도’ 공동체적 결속 강화를 통한 민중적 전투력의 예비, 민주적 마을 운영 방식, 민중적 해방공간 획득 등의 기능으로 하여 일제하에서 미신(迷信)으로 폄하당하며 철저하게 탄압받았다. 더구나 해방 이후에도 기독교 몇 개발지상주의 정책에 의한 혹독한 탄압은 자본주의화에 따른 급격한 농민층 분해와 더불어 농경문화의 근본적 파괴의 원인이 되었다. 정초의 세시풍속이 농한기의 예축적(豫祝的) 농경민속이라고 한다면 파종(播種) 이후 수확 전까지의 세시풍속은 성장기(成長期)의 민속이라고 하겠다. 이 시기의 세시풍속은 한식·단오 등 고대로부터의 농작물 성장 촉진 의례와, 중국 전래 풍속이 결합되었다고 짐작되는 것, 그리고 화전 놀이(火前)·삼월 삼질·용제(龍祭)·기우제 등이 있으며, 실제 생산 노동과 관련된 ‘주먹다듬이’ (성인 노동력으로 인정받는 일종의 산업식)와 김매기를 마친 뒤의 ‘호미씻이’ 등이 있다. 이 중 호미씻이는 일명 백중이라고도 하여 불교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민속이면서 동시에 생산 노동자로서의 농민에게는 최대의 축제이기도 하다. 농민이나 머슴(양반·지주가 많은 마을의 주된 생산자다)들은 세벌 김매기가 끝난 후 힘겨운 노동에서 해방된 기쁨을 만끽하며 동시에 풍농을 기원하는 생산자들만의 광장을 만든다. 그것은 마을굿만큼 경건한 제의의 형태를 띠지는 않지만 대동회의, 대동체의, 대동놀이의 제 요소를 모두 갖춤으로써 대동굿의 기본적 기능을 모두 수행한다. 백중으로부터 한달여의 농한기를 거친 후에는 수확의 기쁨을 누리며 조상과 신앙 대상에게 농작물을 바치는 수확기의 세시풍속의 펼쳐진다. 이 시기의 세시풍속은 밭농사의 수확과 관계된 것으로 보이는 6월의 유두보다 더욱 풍성하고 다채롭다. 대표적인 것은 8월 추석에서 9월 중양절에 이르는 햇곡식의 천신(薦新)과 각종 고사천신(告祀薦新) 및 안택(安宅)이라고 할 수 있다. 추석천신은 햇곡식을 주로 조상에게 바치는 유교적 의례의 형태를 띠는 남성 위주의 풍속이며, 고사천신은 국조신·자연신 등에게 곡물을 바치는 여성 중심의 풍속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수확기의 의례는 정초 농한기나 농사철의 마을 단위의 공동체적 의례와는 달리 가족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 시기의 풍속으로 특이한 것은 길쌈 행사인 바 이는 논밭 농경의 담당자인 남성들과의 역할 분담에 의해 곡식 못지 않게 중요한 의류의 생산을 담당하던 여성들의 공동노동이 연례 행사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상 생산 노동 및 생산물과 관련된 세시풍속을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 논의의 기준에 맞지 않는 세시풍속은 언급하지 않았으며, 동시에 연등, 초파일, 팔관회, 백중 및 우란분절 등 불교와 민속의 습합을 보여 주는 세시풍속에 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다음 회에 불가의 연중 행사와 더불어 살펴보기로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