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西藏)불교 II

이 글은 우리에게 제대로 알려지거나 인식되어 있지 않은 그래서 사뭇 신비로운 서장 불교-티벳 불교-의 그 불교적 전개와 특수성에 대해 폭넓게 살펴보는 귀한 기회를 제공한다.
1지리-문화적 조건, 2민족과 생활양식, 3고유신앙체계-BON교, 4불교 유입사 및 그 전개, 5서장 대장경의 가치, 6서장 불교의 특징의 모두 여섯 장으로 꾸며진 이 논문은 비단 서장 불교의 특수함뿐 아니라 아직도 외부 사람들의 발길을 덜 탄 티벳의 고유한 풍물에 대해서도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티벳은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까닭에, 아직도 그 옛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풍습과 문화 형태를 많이 간직하고 있기에 퍽 흥미롭다.


3. 고유 신앙 체계-본 BON교
히말라야산맥에서 뻗은 지층은 중국에까지 이르고 태평양 해저에로 이어진다. 따라서 아시아의 대부분이 그러하듯 티벳인들도 몽고인종이기 때문에, 시베리아나 고대중국 등의 여러 지역에서 있었던 일종의 샤마니즘Shamanism이 없을 수 없다. 거기에 험준한 자연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은 도교와 같은 중국의 민속문화의 영향을 받아 원초적인 주술기도와 부적신앙을 강하게 토착시켰다. 즉 티벳인들의 일상적인 신념체계가 자연의 재해에 대한 두려움과 희망을 종교적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그러한 원초적 희구를 만족시켜 주는 차원의 매카니즘이 바로 티벳 고유의 토착신앙인 본BON교이다. 세계 어느 민족이나 폐쇄된 태고엔 저마다 고유한 생활철학이나 신념체계인 신화가 있게 마련이지만, 역시 티벳의 본교도 원시적 사유의 만신주의(萬神主義)의 소산이다.
여기에 7세기에 유입된 불교가 업(業)과 윤회의 윤리성을 인식시켜 줌으로써, 힘센 놈이 빼앗고 천한 이들을 속이던 저열한 행위들이 많이 순화되어 가기도 했다. 그러나 본교는 본래 극심한 자연재해에 대한 공포로부터 자기 동족과 재산을 보존하려는 잠재적 의식에서 산출되었으므로 악신숭배나 부적신앙이 강하다. 그러한 예로, 불교의 관세음보살의 육자주(六字呪)인 ‘옴 마니 반메 훔OM MANIPADME HUM ! the jewel in the lotus Hum !)’을 외는 것을 들 수 있다.1)
성직자들은 본파BON-PA라 하는 샤마니스트Shamanist로서 무당춤을 추며 강신(降神) 의식을 행한다. 이들의 종교적 신비구조를 더욱 심도있게 체계화시켜 준 것이 불교의 외적 의례externals의 수용이었다. 본교가 고급스럽게 다듬어지면서 티벳에 정착된 불교의 지도자들인 라마(lamas;the superior ones , 위대한 분, 上人)승들의 지도와 교화에 따라 티벳 정치 지도자들이 불교에 귀의함으로써 재래신앙인 본교의 폐단은 줄어들었다. 특히 중앙티벳 및 서티벳에서 지배력이 강한 라마승들은 본교의 동물이나 인간희생제를 강력히 금지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인구밀도가 심한 동부나 남동티벳의 대부분은 여전히 본교 세력이 강하다. 이 지역은 수세기에 걸쳐 중국어 티벳을 지배하는 한 수단으로 본교를 은근히 장려, 지원했으므로 본교가 왕성해졌고, 또한 악조건 속에 사는 토착 농민들의 주술적인 신앙 차원에서 강하게 뿌리박히게 되었다. 즉 본교는 이동하는 유목민보다는 정착 농민들에게 널리 퍼졌다. 실지로 남동티벳 같은 인구 밀집 지역은 거의 농사를 지으므로, 티벳 전체 인구의 삼분의 이가 본교 신봉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본교는 순수한 고대 본교라기보다는 앞서 말한 대로 불교의 영향으로 더욱 다져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중앙 및 서티벳에서는 라마승들이 본교를 강하게 억누르기 때문에 표면상으로는 본교 성직자들을 만나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 중심부와 떨어진 외곽 지역에서 비밀리에 본교 의식을 집행하는 순회본교승들이 있을 뿐이다. 이에 비해 동티벳에서는 자유로이 본교를 숭상하며, 불교 라마사원처럼 거대한 곤다스GON-DAS 사원에서는 신상(神像), 성인상(聖人像), 신장상(神將像) 등을 모시고 신봉하는데, 라마 사원에 모셔진 신상들의 이름과는 다르다. 본교의 주신은 셴랍스 미보Shen-rabs Mibo인데, 라마승들이 연화생상사(蓮華生上師,Padma Sambhava)를 신성시하듯이 본교승들도 셴랍스 미보를 신성시한다. 불교를 모방하여 만든 본교의식에 관한 책자도 있으나 모두 알아들을 수 없는, 엉터리 범어로 된 주문들이다. 이는 티벳불교인 라마교에 대한 강한 반항과 배척정신에서 착상, 의도된 본교 경전류로서, 그 중 몇 가지는 불전의 장역(藏譯)에서 빌려 온 것이 많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관음의 주문언 ‘옴 마니 반메 훔’이 ‘무-엠-반-니-모Muh-em-pad-ni-mo !’ 로 애송되고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또 그들은 반(反)불교적 Anti-Lamaist chara-

cter이다. 불교가 즐겨 쓰는 불심인(佛心印)인 ‘만(萬)’자는 티벳에서 보통 태양의 운행방향인 오른쪽으로 꼬부라져 있는데(卍,SVASTIKA)2), 본교도들은 그 반대 방향으로 ‘만’자를 표시하여 사용한다. 그러므로 본교의 만자 상징은 음성적(陰性的,lunar character)이며, 동물희생제나 용신(龍神)숭배에서 유래한다고 보아진다.
BON교 의례에 관한 최초의 언급은 5,6세기의 중국측 자료에 나와 있다. 이때는 불교가 유입되기 전이므로 본교 본래의 의식양상을 찾아볼 수 있다.

티벳인들은 매년 한번씩 맹세를 하는데 양, 개, 원숭이들을 희생제로 올리며, 우선 다리를 부러뜨리고서 죽인다. 내장을 긁어내고 잘라 토막낸다. 집행자들은 군중을 모아 놓고 하늘신, 땅신, 산신, 강신, 태양신, 달신, 별신 등을 부른다. 그러고는 “너희들이 변질하거나 믿지 않으면 신들이 분명히 알고 너희를 이 양과 개를처럼 취급할 것이다”고 외친다. 3년마다 큰 축제가 있는데 축제 동안 모든 사람이 한밤중에 제단에 모인다. 제물은 사람, 말, 황소, 당나귀 등이며, 기도하는 자는 “한 마음으로 행동하고 강하게 단합하라. 하늘, 땅의 신은 너희들의 마음을 죄다 아시므로, 만약 너희들이 이 언약을 깨면 너희 몸뚱이는 조각조각 잘리어 이처럼 될 것이다”고 한다.”

불교가 유입된 8세기 초엔 그러한 희생제가 지속되었다.
본교승들의 옷차림은 갑옷이나 외투 같은데 어깨에 작은 깃을 꽂으며, 커다란 면류관에는 두개골이 그려져 있고 깃과 털실로 장식되어 있다. 악마를 퇴치하기 위한 칼과 방패를 손에 쥐고 있으며, 보통 때엔 붉은 두루마기를 입고 간혹 해골이 수놓아진 옷을 걸쳐 입기도 한다. 머리는 텁수룩하고 삭발하지 않는다. 제단에는 털실, 소털, 사람이나 동물의 상을 원시적 희생제물 대신 올려 놓는다.
그러나 오늘날 본교는 라마교의 외형적인 것들을 흡수하여 그 본래의 기능은 많이 상실되었다. 따라서 티벳의 본교는 불교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지만 역으로 불교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본교로부터 영향받은 티벳불교의 양식이 바로 라마교(Lamaism ; Bla-mahi-bstan-pa, 無上敎)이다. 서장 Tibet은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정치, 문화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이루어 나갔으니, 이에 그 불교 유입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4.불교 유입사 및 그 전개
대부분의 민족이나 국가는 최초의 개조(開祖)나 시조를 모두 전설로 일관하고 있다. 그것은 원시 씨족이나 부족이 갖는 공동체적 의식 구조에서 빚어지는 상징 의미 구조이다. 티벳에서는 불교가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니 만큼 불교 전래에 관해서도 일종의 기원 설화가 있다.
기원 후 2세기 초 티벳 최초의 왕 아크리챤포 gnab-khri-btsan-po는 이웃 토가르 To-gar의 프레트레 Pre-thre왕과 수교를 맺었다. 그 후 5세기 초 코토리안챤 Kho-tho-ri-gnan-btsan왕 당시 비로소 보적장엄경(寶笛莊嚴經), 백배참회경(百拜懺悔經) 등이 하늘에서 내려 왔는데, 아무도 읽거나 이해할 수 없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는 전설에 지나지 않고, 불교는 당나라 초기인 손챤감포Sron-btsan-sgam-po왕 ( ? ~ 649) 통치 때에 티벳에 전래되었다.
손챤감포왕은 정관 8년(634) 당태종에게 공물을 바침으로써 국교를 시작하였다. 당시 당은 돌궐, 토속혼(吐谷渾)과 치열하게 싸우는 관계였으므로 이들 배후에 있는 토번과 수교함으로써 정치적 견제를 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이에 놀란 토속혼은 곧 친당정책으로 나아가 홍화(弘化)공주를 왕비로 맞이한다. 손챤감포왕도 당으로부터 공주를 맞이하려고 여러 번 챙했으나, 거절당하자 이윽고 대군을 일으켜 토속혼을 격파하여 청해 밖으로 쫓아버리고 다시 당항, 백란 등의 오랑캐를 공격하며 정관 12년(638), 송주에 진군하였다. 당태종은 하는 수 없이 정관 15년(641) 문성공주를 왕의 배필로 보내었다. 이때 불교의 법사(法師)들이 경(經), 논(論)을 갖고 티벳에 들어갔으며, 기술자와 종이, 먹 등의 일체 문물도 그때 보급되었다. 이로써 당의 문화가 서장에 소개됨과 동시에 불법이 전래, 흥포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당시 문화의 황금기를 누리던 당으로부터 문물을 받아들여 국제적 지위를 높이는 것은 티벳으로서는 매우 중요한 정치 외교적인 정책에 속했다는 것을 뜻한다.
티벳왕은 뿐만 아니라 네팔Nepal의 왕녀 브리쿠티Bhr-kuti를 맞아들여 외교를 맺으며, 주변의 수준높은 문화교류에 힘썼다. 왕은 곧이어 귀족 아누Anu의 아들 투미삼보타Thumi-sambhota, (Anu-bu)를 16명을 딸려 인도에 보내어 불교 및 음운(音體) 등을 배워오도록 하였다. 왕은 군소 티벳족들을 통일하여 세운 강력한 응집력을 바탕으로 토번의 전성기를 맞는 기초를 닦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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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세기 이후 인도교(印度敎)의 영향을 받은 불교는, 8세기초~ 13세기초에 초인간적인 신비력을 얻기 위해 육욕적인 방종까지도 허락하는 밀교적 색채를 띠게 되었다. 이러한 영향을 받아 신비력을 지닌 주문(呪文)들이 많이 쓰이게 되었는데, ‘옴 마니 반메 훔’을 굳이 번역하면 “원대로 진실로 이루어지이다” 창도의, 응축된 암시를 나타내고 있다.
2) 만(萬)자는 卍(아우스바스티카)와 卍(스바스티카)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 둘은 모두 십자가(十) 등과 함께 고대인들의 보편적인 신앙 상징의 표현이었다. 고대인들은 빛의 상징인 태양을 우주 만물의 궁극적 원인이자 생명의 원천으로 믿고 숭배했으므로, 이 만자는 ‘태양의 빛 또는 열’을 의미한다고 여겨진다.
3) 이런 참혹한 제의는 오늘날에도 비슷하게 행해진다고 한다. 한 예로, 티벳족의 90% 이상이 치루는 장례식인 조장(鳥葬)을 들면, 장례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사람이 칼을 휘두르며 시체를 해체해 놓고 방울, 징, 북 등으로 장엄한 독경 소리에 따라 장단을 맞추고 피리를 불어 독수리Ep를 부른다. 새들은 시체를 다 쪼아 먹고 뼈만 남긴 채 떠나가는데, 이 때 죽은 영혼이 새와 함께 이승을 떠나 정토(淨土)나 범계(梵界)에 태어나는 것으로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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