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경계기사량虗空境界豈思量 대도청유리갱장大道淸幽理更長 단득오호풍월재但得五湖風月在 춘래의구백화향春來依舊百花香 허공경계를 어찌 헤아리겠는가! 대도大道는 맑고 그윽해 이치 또한 기나니 다만 오호五湖에 풍월風月 있음을 안다면 봄이 옴에 예대로 백화百花가 향기로우리라! - 야부 송 - 천녀倩女는 측천무후 때의 인물이다. 형주衡州의 부호 장감張鑑의 딸인데 언니가 일찍 죽었기 때문에 부모의 관심이 각별했다. 고운 마음씨에 총기도 있고 용모 또한 고을에서 빼어났었다. 장감에게 타지他地로 출가한 누이가 있었는데 어느 날 외아들 왕주王宙를 남기고 재난을 당해 남편과 함께 죽었다. 장감은 누이의 가산을 정리하고 생질甥姪인 왕주를 데려다 길렀다. 왕주 역시 준수한 용모에 총명하였고 천녀와도 서로 의좋게 지냈다. 장감은 딸과 왕주의 그런 모습을 대견해 하면서 성인이 되면 서로 짝을 지어주겠노라고 생각했는데 천녀와 왕주는 정말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던 가운데 한 권문세가의 아들 빈료賓僚가 천여에게 혼사를 청해왔다. 천녀와 왕주는 안타깝기 이를 데 없으나 세도가의 권세 앞에서 장감은 마음을 돌릴 수가 없었다. 왕주는 길러 준 은혜를 생각하며 아픈 가슴을 부여안고 천녀의 곁을 떠나 촉蜀나라로 향했다. 강 하류를 따라 내려가던 왕주는 한 밤중이 되었을 때 강기슭에 홀로 서 있는 한 여인의 모습을 보았다. 구름이 걷히고 달이 얼굴을 내밀었을 때 왕주는 천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왕주는 기뻐서 천녀와 함께 멀리 떠나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렇게 아이도 기르고 재산도 모으며 살던 천녀는 고향에 두고 온 부모님이 생각나 왕주에게 말했다. “여보, 저는 지난 날 당신과 맺은 언약을 저버릴 수 없어서 부모에게 하나 뿐인 외동딸이지만 불효를 무릅쓰고 당신을 따랐어요. 이제는 두 아들도 낳았으니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 어떻겠어요?” 왕주도 사랑하는 아내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고는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육로를 지나 배를 타고 형주에 도착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다다랐을 때 왕주는 아내와 두 아들을 배에서 기다리게 하고 혼자서 먼저 장감부부에게 인사를 올리게 되었다. 왕주가 말하길, “오랫동안 인사 여쭙지 못해 죄송합니다. 저는 그동안 큰 은혜를 입고 장가들어 아들 둘을 얻었습니다.” 장감은, “그러했느냐? 반가운 소리로구나. 그래 어느 규수와 혼례를 올렸느냐? 왜 지금 함께 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왕주가 천녀와 결혼했음을 밝히자 장감은 말을 끊고 침통하게 말했다. “실은 네가 이 집을 떠나던 날 너를 뒤쫓아 갈까봐 하인들을 시켜 그 아이의 방문을 단단히 지키라고 일러두었었다. 그런데 그날 밤부터 넋이 나간 사람처럼 꼼짝 못하고 앓아누운 지 벌써 삼년 째다.” 이 말을 들은 왕주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는 그 날 천녀와 함께 멀리 떠나 결혼해 살면서 아들 둘을 낳았고 지금 그들은 배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장감이 놀라서 “딸아이가 규중에 몸져누웠다고 분명히 일렀는데 그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그 즈음 천녀는 두 아들을 데리고 집에 도착하였고 같은 때에 맞추어서 병으로 누웠던 천녀가 스르르 일어나 대문을 향해 나갔다. 이윽고 수레에서 내려 고향집 대문 안으로 들어오던 천녀와, 소리 없이 일어나 마중하듯 대문 앞에 서 있던 천녀는 몸이 서로 만나자마자 가만히 합쳐지더니 한 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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