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반이 발우를 챙기고 있었다. 또 어디론가 떠나려는 운수병(쫓水病)이 시작되었나 싶어조심스럽게 물었다. 늘 떠난다는 말을 무슨 유행어처럼 해왔던 도반이었기 때문에 언뭇 불안한 예감이 든 것이다. “어디 떠나려고요” “아닙니다. 누구에게 주려고요” 떠난다는 생각은 나의 기우였다. 도반은 룩룩 몇번 소리내어 웃었다. 이내 얼굴빛을 바꾸며 이런 말을 했다. “사실 이 발우는 무연스님이 주고 간 것입니다.” 무연(無緣)은 얼마 전 윤화(輪網)로 입적한 수계(受뾰)도반이다. 무연의 소식은 우리를 놀라게 하였다. 사고를 당하기 전에 무연은 이미 환속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한 사실올 남편의 초재를 치르기 위해 소복차림으호 찾아온 한 여인을 통해 또렷이 확인할 수 있었다. 명소 눈매가 서글서글하고 구랫나루가 멋있게 흘러내련 그의 훤출한 외모가 돋보여 우린가끔 농담삼아 말하곤 했었다. “좋은 도반 하나 보살에게 !!기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그래서 말올 막 하는 게 아니라고 했던가 놀랍게도 그의 아내는 흘폼이 아니었고, 임신 8 개월째에 접어들고 었다고 친정어머니가 넋두리처럼 말하는 소릴 들었다. “어쩌시려고요” “웬지 그냥 기족에게 건네주고 싶네요” 조그만 종이상자에 발우를 넣고 있는 도반의 표정이 많이 어두워져 있었다. 무연이 해인사를 떠날 때 맡기고 갔다는 그 발우는 옻칠이 군데군데 벗겨져 많이 낡아 보였다. 별안간 유품이 되어 버린 그 발우가 도반에겐 부담이 되었올 게다. “무연스님이 발우를 나에게 건네주고 떠날 때 어쩌면 환속을 결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법명처럼 살다 갔지요 세간과는 인연이 없나 보아요”도반의 작업이 끝날 때까지 ‘수행자가 발우를 버리면 중노릇이 깨진다 ’는 철 집안의 오래된 잠언을 줄곧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무연은 출가와 환속, 이 두가지 모두를 잃고 말았기 때문이다. 한동안 번민과 방황의 시간올 보내고 그는 하산(下山)을 결심했을 것이다. 그 무게에 비해 너무나 쉽게 끝나고 만 그의 새속적 삶이 부질없이 느껴져 순간 코끝이 쩡해져 왔다. 돌연한 그의 입적은 우리가 혼히 느낄 수 있는 감상의 비에 그 이상의 감정이나 의미를 던져주진 못했다. 며칠 전 우체국을 다녀오는 길에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 입은 신사 한분을 만났다. 그냥 지나치려다 웬지 눈에 익은 얼굴인 듯하여 합장을 하였다. 가만히 보니 작년 여름 안거를 해인사 선방에서 지낸 스님이었다. “아니 어떻게 된겁니까.” 이렇게 묻자 대답 대신 차나 한잔 나누자고 했다. 그냥 아무렇게나 승복올 걸쳤던 그의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어 한참을 쳐다 보았다. 그의 사연은 대강 이러했다. 어머니는 독실한 불자로 지족암 큰스님과도 친분이 있었단다. 처음에 그가 지족암에서 출가를 결심했을 때 모친은 독자라는 이유로 극구 반대하였다. 모친의 심한 반대에 부딪혀 결국 머리도 깎지 못한 채 하산하긴 했는데 쉽사리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 결국 어머니 몰래 직지사로 입산하여 몇년을 연락도 없이 제방선원에서 안거를 착실히 지냈해제를 하고 오랜만에 그의 노모(老母)를 찾았을 때, 사태는 출가 전보다 훨씬 심각해져있었다. 포기한 줄 알았던 모친이 아들에 대한 강한 집착력 때문에 신경쇠약으로 거의 실명위기에 놓여버련 것이었다. 그로부터 그의 마음은 혼들리기 시작했고 때마침 나타난 한 여인이 환속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주민동록 퇴거일로 왔다는 그에게 넌즈시 환속한 도반 무연의 삶을 이야기 했더니 표정이많이 굳어졌다. “스님. 저도 걱정입니다. 시은(施恩)만 축내고 또 이렇게 속인이 되었습니다. 축원 좀 해주십시오” “그래도 당당하게 사십시오 출가할 때 그 용기로 말입니다.”그전의 수행자 특유의 호기가 환속이라는 옷 때문인지 많이 위축되어 보였다. 현실에 그는 점점 나약해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잘 보이던 스님네가 한동안 소식이 없으면 대개 두 가지로 추측하곤 한다. 토굴 아니면 환속. 괴각(乖角)질올 부려도 절 집안에 남아있는 것이 백번 낫다는 말이 었다. 모두가 그혈듯한 명분올 달고 숭복올 벗지만 언제나 그것은 자기 합리화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얄팍한 수단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수행자 모두에겐 ‘세속에로의 회귀본능’이 잠재해 었을지도 모른다고 역설한 한 스님의 생각이 결코 우스개 소리가 아닌 듯 싶다. 「초발심자경문」에선 이렇게 깨우치고 있다.人情農摩道冷情永不顧 인정이 짙으면 도심이 엷어지나니. 냉정히 하여 미련두지 말지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