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배낭을 꺼내어 짐을 꾸린다. 합천의 연호사 와 주변을 돌아볼 계획이다. 몇 가지의 옷과 휴대폰, 충전기와 노트북 등등… 배낭은 어느새 9개월째에 들 어선 임신부의 배가 되어버렸다. ‘이러다가는 큰 배낭 으로 옮겨 담게 되겠네! 이게 아닌데…’나는 괴나리 봇짐 같은 작은 배낭을 꾸릴 요량이었었다. 그런데 하 나 둘 채워진 물건들이 늘어나다 보니 이 모양이 된 것이다. 길을 떠날 땐 무엇이 필요할까? 습관적으로 챙겨 넣었던 거의 모든 짐을 덜어냈고, 그 대신‘Sara Kirsch, 원재훈, 유하, Jacque Prevert’의 시집만을 챙 겨 넣었다. 절집을 찾아갈 때에도 매번 이러저러한 것 들을 차에 싣고 다니기는 마찬가지였다. 막상 짐을 줄 이고 나니 이미 절집에라도 도착한 것처럼 마음이 가 볍다. 연호사로 들어가는 길은 합천 대야성陜川大耶城과 황강黃江을 사이에 두고 나 있다. 절을 포함한 이 일대 는 삼국시대 때 백제와 신라 서부지방의 접경지대였 다. 연호사는 신라 천년고찰이다. 643년 선덕여왕 재 위 12년에 백제 윤충 장군이 2만의 대군을 이끌고 합 천 대야성을 향해 진군한다. 이때 합천 대야성의 성주 는 김유신의 사위 김품석이다. 김품석은 성내의 미인 은 신분과 처지를 막론하고 아내로 맞이하는데, 자신 의 아내를 성주인 김품석에게 빼앗긴 검일은 앙심을 품고 백제에 밀고를 하고 창고에 불을 지르면서 대야 성문을열어준다. 이 전투로 신라는 2천여명의 장병이 전사하고 1천 여명은 포로로 붙잡힌다. 김품석의 참모 죽죽은 끝까 지 성주에게 항복하기를 거부하며 장렬하게 전사하 고, 김품석은 항복했으나 죽임을 당한다. 대야성이 함 락되었음은 물론이다. 대야성은 신라 최전방의 요충 지로전략적으로매우중요한곳이기도하다. 이때 전사한 장병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백성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서 대야성의 가장 양지바른 곳, 황강과 정양호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연호사를 세 웠다. 풍수적으로는 누런 황소가 엎드려서 황강물을 마시는곳이라한다. 전쟁의 역사를 간직한 길 끝에 연호사가 있었다. 사 찰로 들어가는 계단은 마치 황강黃江으로 내려가는길 같아 보인다. 절은 강과 마주하고 있 는 탓에 물살이 느껴질 정도이다. 법당 앞엔 시원스런 마루가 깔려 오가는 이들 이 다리쉼을 한다. 법당 마루를 따라 범 종루梵鐘樓에 닿는다. 강을 향해 한걸음 을 더 내디딘 누각 기둥엔 아침종송(朝 禮鐘頌)이적혀있다. 원차종성변법계願此鐘聲遍法界 철위유암실개명鐵圍幽暗悉皆明 삼도이고파도산三途離苦破刀山 일체중생성정각一切衆生成正覺 여행을 하다 보면 이따금 길이 끝나는 곳에 도착한다. 호리병 같은 곳엔 작은 마을이나 집 한 채가 있었다. 대개의 경 우 길 끝에 사는 이들의 생활은 곤궁했 다. 반면 이들의 마음은 평온했고, 들어 왔던 그 외길처럼 삶 또한 한 방향을 가 리키고 있었다. 밖으로 드러나는 단순한 삶을 하고 있었다. 사방으로 통하는 도 시의 길 옆에서 살아온 나는 그동안 혼 자만의 공간을 원했었다. 스스로 마련한 새장에 들어앉아, 안도의 숨을 내쉬곤 했었다. 지친 몸을 달래는 곳은 으레 타 인과 단절된 공간이었다. 길 끝에 들어 와 강 건너 먼 곳을 바라본다. 누가‘길 끝의 삶’을 살고 있는가? 막힌 길에 살 고있는이는바로‘나’이다. 연호사烟湖 寺를 나오는 길. 황강黃江을 내려다보며 있는 함벽루涵碧樓에 서니, ‘이제 그만 멈추고 보이는 모든 길에서 이륙하라’ 고 말하는‘유하’의 시가 눈에 든다. 이 제새장은더이상필요치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