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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철慧徹 혜철스님은 세간의 성은 박씨이며, 삭주朔 州에 속하였던 선곡현善谷縣, 지금의 영주· 예안 지역에서 785년에 태어나셨다. 15세에 이르러 인근에 있던 부석사浮石寺에서 출가 하여 화엄학을 배웠는데 한번에 다섯줄씩 읽 을 수 있을 만큼 총명하였다고 전한다. 그 래서 화엄경의 숨은 이치를 밝혀내어 종래 에 잘못 알려진 것들을 바로잡고, 배우는 이 들의 어두움을 떨쳐버리니, 동학들이 말하기 를“어제는 함께 학문을 닦는 벗이었는데, 오늘은 가르치고 이끌어 주는 스승이 되었 으니 참으로 불문의 안회顔回이다.”라고 할 정도였다. 22세에 수계하고, 814년에 당으로 건너갔 다. 그리고 도의선사와 마찬가지로 공공산龔 公山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던 서당 지 장대사 西堂 智藏大師로부터 심인心印을 받았 다. 얼마 있지 않아 서당西堂이 돌아가신 뒤 에는 좋은 산과 영험한 장소를 찾아 두루 편 력하다가, 서주西州의 부사사浮沙寺에 이르 러 대장경을 본격적으로 탐구하였는데, 밤낮 으로 정진하여 3년 동안 침상에 눕지도 자리 를 펴지도 않았다고 한다. 당나라로 간 지 25년 만인 839년에 다시 신라로 돌아와 곡성군의 동남쪽에 있는 동리 산桐裏山에 대안사大安寺를 지었는데, 이것이 53 름하였다. 두 소란스러운 지경을 떠났으므로 적寂이라고 이름하였다. 두 죽음을 넘어섰으 므로 멸滅이라고 이름하였다. 如來衣者柔和忍辱心是. 此卽寂滅忍. 生死 涅槃二邊與中道理不二不異. 故名柔和. 安心中道故名爲忍. 離二喧故名寂. 過二死故 名滅. 인忍은 분명히 있지만 보이지는 않는 진리 라는 뜻으로 쓰인다. 진리가 쉽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마치 우리가 힘든 것이 나 아픈 것을 참고 있는 것과 같은 속성이라 는 점에 주목한 표현이다. 그래서 적과 인이 모두 깨달음의 경지를 뜻하는 말로 보는 편 이 온당할 것 같다. 선사가 이른 경지를 선사의 행적을 적은 「적인선사비寂忍禪師碑」에서는 다음과 같 이 기록하고 있다. 공空 가운데 유有를 설하고, 색色의 끝에서 공空을 알아, 바야흐로 육진六塵을 정화하며 스스로 십지十地를 뛰어넘으니, 체득한 바가 허공이 큰 것보다 크고, 헤아리는 바는 바다 의 깊이보다 깊다. 空中說有, 色際知空, 方淨六塵, 自超十地, 所體大於虛空之大, 所量深於瀚海之深. 선사 스스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부처는 본래 부처가 없는데 억지로 이름을 세 운 것이요, 나는 본래 내가 없는 것이니 일찍이 한 물건도 있지 아니하다. 견성見性의 깨달음은 바로 이 깨달음이니, 비유하면 법法은 공空하되 공空이 아니며, 묵묵한 마음이 바로 이 마음이 고, 적적한 지혜가 바로 이 지혜이다. 바로 선종 9산 중 하나인 동리산문이다. 많 은 제자를 배출하고 또한 신라 조정과 긴밀 한 관계를 유지하였던 혜철스님은 861년에 천화遷化하셨는데, 절의 송봉松峰에 안치하 고 돌로 부도를 세웠다고 한다. 이 부도가 바 로 적인선사조륜청정탑이다. 조륜照輪은 달 을 뜻하는 동시에 깨달음의 경지를 나타내 는 말이니, 그 경지가 청정하였음을 보여주 는 탑호塔號이다. 그렇다면 적인寂忍은 무슨 뜻일까? 적인寂忍 적인은 바로 혜철 스님의 시호이다. 적寂은 진리의 고요함을 뜻하는 말이다. 한편은 인忍은 인욕忍辱 등에서 보이는 것처럼 참는 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두 글자를 합한 적인 은 결코 고요함과 참음이라는 뜻에 그치는 것 같지 않다.「마하지관摩訶止觀」에 마침 이 적인의 뜻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 있다. 여래의如來衣라고 하는 것은 유화인욕심柔 和忍辱心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곧 적멸인寂 滅忍이다. 생사와 열반 두 언저리의 거칠고 추 악한 것과 중도中道의 이치가 둘이 아니고 다 르지 않다. 그러므로 유화柔和라고 이름하였 다. 중도에 고요히 안주하므로 인忍이라고 이 | 적인선사조륜청정탑과 혜철 | 54 |산사山寺·선사禪師| 佛本無佛, 强以立名, 我本無我, 未嘗有物. 見性之了, 是了, 喩法之空非空, 默默之心是 心, 寂寂之慧是慧. 이렇게 보면 과연 선사의 깨달은 경지가 공 과 유, 색과 공의 가운데, 즉 중도에 있으니 인忍이라 할 수 있고, 적적寂寂한 지혜에 도 달하였다고 하였으니 적寂이라고 할 만한다. 선사와 신통력 적인선사寂忍禪師 혜철慧徹 스님의 신통력 은 각별하였던 것 같다. 839년에 당나라에서 신라로 돌아온 스님 은 무주(武州) 관내의 쌍봉난야 곧 현재의 쌍 봉사에서 여름 안거를 하였다. 그런데 그때 심한 가뭄이 들어 산과 내가 말라붙고,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을 말할 것도 없고, 구름 한 조각조차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그 지역 을 다스리는 관리가 선사에게 간절히 청하 니, 선사가 고요한 방에 들어가 좋은 향을 사 르며 하늘과 땅에 기원하였다. 잠시 후 단비 가 조금씩 내려 무주 관내의 들을 적시더니, 나중에는 큰 비가 좍좍 쏟아졌다고 한다. 또 이악理嶽이라는 곳에 머무르면서 묵언 수행을 하고 있을 때, 골짜기에 갑자기 들불 이 일어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아 암자를 태 우려 하는데 인력으로는 막을 수 있는 상황 도 아니었고, 또한 도망갈 길도 없었다. 선사 가 단정히 앉아 묵묵히 생각하는 중에 소나 기가 세차게 쏟아져 불을 모두 꺼버리니 온 산이 불탔으나 오직 선사가 있던 건물만 화 재를 면하였다고 한다. 선사는 미래를 내다보는 신통력도 가지고 있었다. 일찍이 중국의 천태산天台山 국청 사國淸寺에 머무를 때 화가 있을 것을 미리 알고 옷을 털고 떠났는데, 사람들이 그 까닭 을 알지 못하였으나 오래지 않아 온 절에 전 염병이 돌아 죽은 자가 십여 명이었다. 또 처음 당나라에 갈 때 죄인의 무리와 함 께 같은 배로 취성군取城郡에 이르렀는데 그 곳의 관리가 죄인의 무리인 줄 알고 칼을 씌 워 가두고 추궁하였다. 선사는 자신이 승려 이며 당으로 가기 위해서 그 배를 탔다는 말 을 하지 않고 죄인들과 같이 하옥되었는데, 군감이 죄인들이 배를 타고 온 사실을 왕에 게 아뢰고 왕의 명령을 받아 30여 명의 목 을 베었다. 마침내 순서가 선사에게 이르렀 으나, 선사는 얼굴이 온화하여 죄인같지 않 았고 또한 스스로 형장에 나아가니, 관리가 차마 바로 죽이라고 하지 못하였다. 곧 다시 명령이 있어 석방되니 오직 선사만이 죽음을 면하였다고 한다. 55 조륜청정탑照輪淸淨塔 적인선사조륜청정탑을 세운 것이 861년으 로 생각되므로, 승탑 중에서는 844년에 세 워진 염거화상탑을 잇는다고 할 수 있다. 그 래서 염거화상탑과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 다. 그래서 염거화상탑과 비교하면서 탑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염거화상탑의 경우는 땅과 맞닿은 지대석 부분이 제 모습이 아닌 것으로 생각되는데, 적인선사승탑은 두 단의 4각형 지대석이 깔 려 있다. 그 위로 하대석, 중대석, 상대석, 탑 신받침이 차례로 올라가 있는데, 각각 한 개 의 통돌로 이루어져 있다. 8각형의 하대석의 하단에는 내부에 특별한 문양을 넣지 않은 안상眼象을 배치하였고, 상 단에는 사자상을 조각하였다. 각 면의 사자 상이 예사롭지 않은데, 갈기털이 선명할 뿐 만 아니라, 모두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앞발을 들어 혀로 핥고 있는 사자가 있는가 하면, 뒷발을 들어 몸을 긁고 있는 것 같은 사 자도 있다. 사자의 모습을 잘 관찰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생각해 내기 어려운 다양한 자세 를 표현하고 있다. 사천왕상의 힘찬 역동성과 아울러, 참된 진리란, 정靜과 동動, 공空과 유有 사이의 중 도中道임을 보여주려고 한 것인지도 모르겠 다. 중대석은 하대석에 비해서 낮고 좁으며 특 별한 장식도 없다. 다만 아래쪽에 4단의 고 임을 두었는데, 첫번째 고임은 높고 넓으며, 나머지 3단은 낮고 좁게 만들었다. 상대석은 아래쪽에 3단의 받침을 둔 다음, 3겹의 연꽃을 화려하게 조각하고 그 사이로 또 꽃잎이 보이도록 하였다. 엄밀히 말하면 4겹으로 연꽃을 배열한 셈이고, 그만큼 연꽃 이 풍성하게 보인다. 연꽃 위에는 한 면에 2 개씩 안상을 조각하고 그 안에도 꽃문양을 넣었다. 상대석 위로 탑신받침을 두었는데, 중대석의 고임과 비슷한 모양이다. 탑신석은 팔각원당형이고 앞뒤로 문모양 을 새기고 그 좌우에 사천왕상을 배치하였 다. 지붕돌은 넓은 편으로 밑면에는 서까래 를, 윗면에는 기왓골과 막새기와까지 표현하 여 목조건축의 지붕양식을 사실적으로 나타 냈다. 추녀의 곡선은 완만하지만, 각 귀퉁이 는 급하게 치켜올라간 모습이다. 상륜부는 솟은 연꽃 모양의 앙화仰花, 엎어 놓은 그릇 모양의 복발覆鉢, 바퀴 모양의 보 륜寶輪, 연꽃봉오리를 닮은 보주寶珠 등을 화 려하게 배치하였다. 이처럼 적인선사의 승탑은 화려함과 간소 함, 역동성과 고요함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 운 탑이다. 적인寂忍이라 부르는 깨달음의 경 지 또한 그러한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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