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그 실천 영역의 확대를 위해

1. 한국 불교에서의 비구니의 위상

비구니 문제를 출가 승단 전체의 문제로부터 따로 떼내어 제기하는 것 자체가 이미 비구니는 한국 불교의 여러 방면에서 소외당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비구니의 소외 현상은 민주적이지 못한 불교의 제도 및 그 분위기에 원인이 있다고 본다.
조계종 종헌 제3장에는 종단의 구성에 대하여 “종단은 승려(비구, 비구니)와 신도(우바세, 우바이)로써 구성하며 승려는 구족계와 보살계를 수지하고 수도 또는 교화에 전력하는 불가 독신자 이어야 하며 신도는 재가 오계 및 보살계를 수지하고 삼보를 호지하며 종지를 신수 봉행하는 자라야 한다”고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 종단 살림의 중요한 직책은 비구가 전횡하다시피 하고 있어 비구니와 재가 신도는 종단 살림의 참여가 근본적으로 봉쇄되어 있는 실정이다. 특히 비구니는 같은 출가승인데도 독립, 자영적인 비구니 사찰의 운영 및 관리를 제외한, 종단 차원의 논의 구조에서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게다가 비구의 비구니에 대한 비하 감정의 일반화 현상은 더욱더 비구니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이렇듯 한국 불교의 모든 일반적인 조건이 비구니를 고립시키고 폐쇄시키는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에 반하여, 대부분의 비구니는 수행과 교화에 전력하면서 비구니만의 고유한 부분들에서 그 역할과 임무를 충실히 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구니의 특수한 역할들이 한국 불교의 전체적인 방향과 제도적인 논의 구조의 수렴과정을 통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비구니의 고립화 현상에 대한 반동적인 감정이 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 불교의 비민주적인 제도와 분위기로 말미암은 비구니의 소외 문제에 대해서, 그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보려는 노력없이, 피해자로서의 보상 심리의 발현과 같은 미온적이고 방어적인 노력으로만 대처하려 한다면 부분적으로나 단계적으로나 긍정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 불교의 발전에 또다른 심각한 장애 요소를 잉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점들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불교 내에서 나아가서는 한국 사회에서 비구니의 실천 영역의 확대를 위한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해 보기로 한다.

2. 비구니의 사회화 과정

수행과 교화를 통한 전인적인 인격 연마를 위해 정진하는 출가승들은 그 실천의 영역이 확대되어감에 따라 필연적으로 사회와 만나게 된다. 그러나 조금은 생경한 사회와의 만남이 모두에게 실천의 지명을 지속적으로 열어주는 것만은 아니다. 어떤이는 사회와 제대로 융합하지 못하고 결국 좌절하여 초월적 수행주의로 빠지기도 하고, 어떤 이는 사회와의 만남으로 파생된 갈등과 문제들을 사회적 실천을 통하여 극복해 가면서 거듭 새로워지는 창조의 삶을 살아가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사회와 직접 부딪치지 않은 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족해 버리는 위안의 삶을 살기도 한다. 비구니의 경우도 이러한 유형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여기에서는 비구니 세 명의 사례를 중심으로 비구니의 사회화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물론 이러한 사례는 특수성을 띤 것이겠지만 개개인의 특수성은 일반성을 바탕으로 하여 발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작업에서도 보편적인 답을 얻을 수가 있다. 그리고 강원 교육의 졸업을 비구니의 사회화 과정의 첫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다. 출가자들의 기본적인 교육 과정을 강원 교과 과정으로 삼아 사회와의 만남의 기점을 강원 졸업으로 보는 것은 현실성 있는 파악일 것이다. 왜냐하면 강원 교육은 거의 모든 출가자들이 일반적으로 수화하고 있는 현 실정을 잘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출가 이후 행자 생활은 각자의 경우에 따라 수행 방법이 다르겠지만, 강원 교육은 그 수업 연한이나 교과 과정이 비구나 비구니나 같기 때문에, 출발점에서 각자에게 동일성을 부여할 수가 있다.

● ㄱ스님의 경우
한국 불교는 선중심 또는 선수행 우위의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특히 조계종은 금강경을 소의 경전으로 할 정도로 선중심의 교단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강원교육의 교육과정에도 적용되어 강원교육의 교육과정은 선중심의 교과목이 80% 이상을 차지한다. 또한 선수행을 하는 수좌에 대한 우월감이 팽배한 분위기 속에서 강원 졸업 후 선방으로 향하는 것이 수행을 잘하는 모범으로 묵계되어 있는 실정이다. ㄱ스님도 이러한 초월적 수행주의를 지향해서 사회와의 일차적 만남도 없이 강원졸업과 동시에 선방으로 향한다. 이렇게하여 ㄱ스님은 안거와 만행을 거듭하는 수좌로 자리잡게 되고 안거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중진수좌로서 법계가 형상되어 간다. 그러나 ㄱ스님은 만행을 통하여 비로소 사회와의 만남이 실현된다. 안거를 통하여 용맹정진한 결과들로는 사회생활을 통하여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중생을 제도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회와의 만남에 있어서 방편이 구비되지 못했고 고통받는 중생의 구체적 모습들에 대해 기본 지식도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스님은 중생제도의 뜻만은 충천했지만 결국 고통받는 중생들에게는 방관자 또는 초월자일 뿐이었다. ㄱ스님은 안거와 만행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향상되는 법계와는 반비례하여 갈등과 고민이 더욱더 처참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ㄱ스님은 사회와의 만남에서 맛본 좌절때문에 오히려 사회와 철저한 담을 쌓는 초월자가 된다. 그리하여 사회와의 연관을 완전히 무시한 채 초월적 자기 수행의 우위만을 견지하는 편협한 군림자로 자리잡게 되었다.

● ㄴ스님의 경우
ㄴ스님은 강원시절부터 포교와 교화에 남다른 관심이 많았다. 특히 불교이념에 입각한 유아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비구니들의 일반적 특성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비구니들이 포교에 관심을 가졌을 때 최초로 선택하게 되는 것이 불교유치원인 것이다. 이것은 지금 한국불교의 전반적인 상황이 불교유치원의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다는 객관적인 조건도 작용하였겠지만 아울러 비구니가 지닌 모성본능의 특성도 그 이유의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ㄴ스님은 은사스님이 운영 관리하고 있는 도시의 포교당에 조그마한 불교유치원을 강원졸업과 동시에 개원하였다.
유치원이 날로 성장함에 따라 일에 대한 보람을 느끼게 된 ㄴ스님은 주위의 불우한 청소년들을 위해 야간학교를 만들었다. 대학생 불자들의 도움을 받아 교사조직을 구성하고 ㄴ스님 자신도 윤리과목을 강의하였다.
그런데 ㄴ스님에게 첫번째 시련이 닥쳤다. 공장에서 일하는 여학생 한명이 수업시간에 자기는 하루 12시간 일하고도 십만원도 못받는데 이러한 문제들을 스님께서 어떻게 해결해 주실 수 없냐고 질문하였던 것이다. 이 질문의 근본적인 내용은 현실적인 불평등 관계를 불교는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있겠는가? 라는 질문인 것이다. ㄴ스님은 고민에 빠쳤다. 지금까지의 자신의 노력은 모든 사회현상들이 불교 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해결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문제의 해결은 사회적 실천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ㄴ스님의 고민은 종국에 가서 사회적 현실 참여냐 아니면 불교라는 보호 울타리 속에서 위안하며 사느냐의 귀로에 놓에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대학생 교사들이 의식화 학습을 한다고 해서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ㄴ스님은 결국 이러한 사회와 불교와의 상호연관적인 인식을 포기해 버리고 불교라는 보호막 속에 안주해 버린 채 사회의 첨예화된 부분과 관계성이 상대적으로 희박한 유아교육에만 전념하며 사회의 제현상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족하는 위안의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 ㄷ스님의 경우
ㄷ스님은 강원교육에서 결여된, 현대사회를 올바르게 파악하는 사회과학의 공부의 보충을 위해 강원 졸업과 동시에 동국대학교 선학과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ㄷ스님의 바램은 충족되지 않았다. 동국 대학교 선학과 교육과정은 외국어를 몇가지 새롭게 배우고 불교사를 통찰하는 것 이외에는 강원 교육과정과 대동소이하여 제사회과학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지 않았다. 실의에 빠져있는 ㄷ스님께 새로운 경험의 기회가 왔다. 비구니 영화제작 반대를 위한 전국비구니 궐기대회에 참가한 것이다. 비구니의 성행위를 소재로 하여 흥행을 노리는 얄팍한 상술을 응징하고 승보의 권위를 회복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종단의 주요 직책을 담당하고 있는 비구들의 태도는 냉소적이었다. 여기에 자극받은 비구니들은 적극적인 시위도 불사한다는 방침을 세워 관계 당국에 통보하자 당국은 사회적 확산을 우려하여 영화 제작의 중단을 행정적으로 명령하였던 것이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ㄷ스님은 불교의 비민주화된 제도 때문에 소외되는 비구니의 권리행사와 자체교육을 위한 전국비구니회를 조직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조직활동을 통해 진보적인 비구들과의
만남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서 한국불교에 대한 공동관심사를 논의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비구와 비구니는 연합하여 불교의 발전을 저해하는 불교관계 제악법 철폐를 위한 전국승려대회를 개최하게 된다. ㄷ스님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종단의 모든 중진스님들도 찬성과 지지를 보냈다. 결국 정부 당국도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지상보도하였다. ㄷ스님은 법열을 맛보았다. 그리고 분명 깨달았다. 불교와 사회는 상호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불교적 실천이 사회화되지 않을 때 예토의 정토화는 관념적 이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3. 비구니, 실천영역 확대를 위한 방향

이상에서 살펴 본 사례를 근거로 하여 바람직한 방향을 설정해 보기로 한다.
첫째, 비구니의 조직적 결속을 통한 집단적 의사 표시가 요구된다. 불교 내의 민주화 작업과 병행하여 비구니들의 권리행사를 위한 전국적 조직이 요구된다. 이러한 조직이 구성될 때 집단적 의사 표시는 가능하며 이러한 집단적 의사 표시가 곧 개선과 개혁을 초래하는 기본 요인인 것이다.
둘째, 사회 제분야에 실천적 장(場)을 확보해야된다. 수행의 궁극은 사회적 실천을 통하여 체득되어야하기 때문에 실천을 위한 공동장(共同場)의 확보와 아울러 사회적 실천을 통해 이룩한 역량을 집단 속에 축적할 필요가 있다. 개인의 경험이 개인에게 축적되는 것을 지양하고 집단적 논의를 거친 후 경험한 역량들을 집단 속에 축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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