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의 언어를 통해 가르침은 어떻게 수행되는가(6)

㉡以体從用의 입장에서 名 등이 가르침의 体이다. “体가 用을 따른다”는 표현은 「探玄記」에는 分假異案이라는 표현으로 되어 있고, 이는 「成唯識論」의 假案異라는 귀절에서 빌어온 것이다. 유식론에서의 의도는, 名이란 聱을 떠나서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지만(不離) 이는 不相應行法으로서 法處에 속하고, 聲은 角處에 속하므로 聲에 바로 근거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不郞, 案異) 사실을 밝히려는 것이다. 그래서 실유하는 色法과는 별도로 假法이 名 등을 나누어 세우게 되었다는 뜻이다. 유식논에는 여기에 名 등을 교체로 삼겠다는 의도는 없다. 法筬은 유식의 이러한 해석을 빌어 전통적 논쟁들을 四句作村로 끌어들이고, 淸倞은 이를 다시 体用論으로 확대한다. 그러나, 탐현기나 현담의 해석-섭가종실로 聲이 体, 이체종용으로 名 등이 体一은 다만 “聲은 案有, 名 등은 假立”이라는 대승의 일반적인 전제를 형식화하여 놓은 것일 뿐, 이에 대해 서로 다른 異見들이 실재했던 것은 아니다. 또한, 이 두번째 입장도 첫번째 입장을 형식적으로 앞뒤를 바꿔 놓은 것일 뿐 내용에 있어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 모두 유식교학의 논증을 그대로 충실히 따르고 있을 뿐이다. 동일한 내용을 가지고 체용론 따위의 교묘한 조작을 가해 구체적인 교체론의 난제(詮用의 기능을 語業이 담당하느냐, 名 등이 담당하느냐)를 회피한다는 것은 문제를 단순히 우회하는 노릇일뿐이다. 체용론은 존재론적 이견들을 통합, 조정하려는 목적에서 세워진 방법론이다. 이같은 방법이 교체론의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교체론이 존재론과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현담의 주장을 소승의 이견에 맞춰 보면, 첫째 입장은 經部의 주장을, 둘째 입장은 有部의 주장을 대변하는 격이 된다. 이 상충하는 입장이 유식교학과 体用輪의 결합으로 해소된다. 만일 양자의 주장이 존재론적 논쟁(名 등의 실재 여부, 敎, 聲, 名의 존재 근거)에 국한된 것이었다면 이러한 해결방식이 유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르침을 전달하는 수단으로서의 능전의 기능을 聲이 담당하느냐, 名이 담당하느냐, 또는 그 성격과 한계는 무엇이냐 따위의 구체적인 문제에 있어 이런 양다리 걸치기 식의 해석은 무모한 것이 된다. 능전에 대한 이견은 가르침을 수용, 실천하는 실제작업에 바로 영향을 미치는 현실적 난제이기 때문이다.
현담의 방법론적 독창성을 제외시켜 놓고 보면, 현담이 제시하는 대승에서의 이견들은 모두 지난호에서 설명한 유식교학의 입장을 변형시킨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해결된 것처럼 보이는 교체론의 聲名 논쟁은 경부에서 유식법 상종으로 흐르는 하나의 계열을 선택한 것일 뿐이다. 그 논쟁의 의의는 사실상 해결된 것도, 소멸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교체론, 존재론, 방법론이 뒤얽혀 더욱 복잡한 난제들을 낳았을 뿐이다. 아둫든 현담에서는 이 입장을 유식론과, 법상종의 注統들을 거의 그대로 인용하면서 설명한다. 이 설명의 핵심은 名 등이 비록假法이기는 하지만 證表의 用은 확실히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四法이 모두 가르침의 体이다.
이 입장은 「탐현기」의 제3구 ‘假案合辯하여서 亦훌亦名’에 해당한다. 이에 따르면, 앞의 두 입장이 모두 敎와 理의 근거를 갖춘 타당한 立論이므로 양자 모두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가르침이란 修有하는 佛体을 통해 설해진 것이므로 그 근거는 부처님의 목소리로 보아야 하지만, 설해지는 과정에서 假有인 名句文이 실재적인 詮表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으므로 이 또한 가르침의 근거가 된다. 이 양자가 서로 의지하고 서로 도와서 가르침은 수행된다는 입장이다. 이를테면, 부처님의 목소리만을 교체로 본다면, 부처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 후대로 流傳하여 경전에 글자로 적혀졌을 때는 무엇으로 교체를 삼아야 하겠는가. 이미 소리는 없어졌지만 명 등이 글자로 변형된 속에 남아 가르침을 수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담에서는 이 입장을 「深密經」, 「掙名經」, 「十地論」 등의 교증을 들어 입증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전술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5. 大小乘의 주장들을 모두 會通함
이 부분은 「탐현기」의 第四句 ‘假案浪하여서 非聲非名’에 해당해야 할 부분이지만 현담에서는 이를 따로 떼어서 소승의 이견들을 합해 별도의 항목으로 독립시켜 놓았다. 그 이유는 탐현기에서는 四句를 합하여 대승의 교체라고 간결하게 결론지은 것을, 현담에서는 화엄교학의 五敎判으로 세분하여 그 차이점을 강조하려 하기 때문이다.
소승에서의 견해 차이는 四法이 모두 실체가 된다는 유부의 견해와, 聲만이 실체라는 經部의 입장으로 집약된다. 대승에서는 四法을 모두 활용하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차별이 있다. 화엄교학에서는 小乘敎, 始敎(相敎, 空敎), 終敎, 願敎, 圓敎의 五敎制을 세우는데 이제 能詮四法에서의 이견들을 이 5교에 배속회통하려는 것이다. 이를 간략히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돈교의에는 두 가지 구별이 있다. 眞空의 입장에서 一路向上으로 언어에 당해 바로 언어를 떠나버리는 順義와, 언어에 당해 언어의 한계에 매달리지 않으면서 이를 통한 가르침을 성취하는 圓順義가 그것으로, 이는 원교와 통한다. 「十地經論」에서는 (名과 聲) 허공에 그린 그램이나 허공 속을 흐르는 바람과도 같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지혜는 이와 같이 분별하여서는 얻을 수 없다 …허공과 바람, 허공과 그림이 합해졌으니 그 모양을 (따로) 인식할 수는 없다. 이 언어를 통한 가르침은 證智와 相應하는 것이기 때문에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것이나 벽 위에 그려진 그림과는 다른 것이다. 다만 가르침의 통로로만 나아가니 보고 들을 수 있다라고 하여 증지와 언교를 연결지워 가르침을 성취하는 敎道를 설정하고 있다. 이런 입장을 언어의 한계에 매이지 않으면서 원융한 언어를 통한 가르침의 길을 확보하는 원돈의 언어관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無優와 圓融따위의 애매하게 신비화되기 십상언 표현으로 해석한 이러한 입장의 언어관이, 기존의 교체론에 부가된 화엄교학의 독자적인 성과이다. 여기에서 공인된 한계를 넘어 언어를 통한 가르침의 가능성이 보장된다. 언어를 통한 가르침은 언어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6. 能뚫四法과 현담의 해석-그 특정과 의의
소승과 대승의 교체론이 품고 있는 의의를 이 자리에서 모조리 문제삼아 상론할 수는 없다. 여기서는 다만 이들을 해석해 내는 화엄교학의 입장과 방식만을 주제로 삼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개의 교체론이 현담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까지 시사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화엄교학의 해설이 탁월한 장점을 갖고 있는지는 별문제이나, 이와 관계없이 다양한 이견들의 전개는 가르침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제거하는 단서들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현담교체론의 세 측면을 지적하고, 내용상으로는경부와 법상종으로 이어지는 전통을 답습하고 있음을 설명한 바 있다. 이 여러 측면들은 앞뒤로 맞물리어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는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특정은 여러 이견들을 체계적으로 회통하는 독특한 방법에 있다. 능전4법을 해석하는방법론은 대개 빼用홉움, 四句作村法, 無優와 圖願의 체계적 會通의 논리로 요약된다. 이 모든 이견들을 통합하는 방식의 밑바닥에는 소위 性起를 전제로 하는 法界觀이 놓여 있다. 空有, 理事의 無麗한 相 관계를 체계화하여 法性이나 一心의 本性따위로 屬一시키고, 이를 모든 존재와 인식, 실천의 최종 근거로 삼는 본성론적 祿敎가 화엄교학의 시발점이 된다. 그런데, 이런 교학의 근거가 되는 경전해석에는 교체론의 전제들어 선결 문제가 된다. 여기에서 소위 해석학적 순환이라는 난점과 현담교체론의 이중성격이 드러난다. 경전과 교리해석을 위한 전제로서의 교체론이 해석된 체계에 의해 보증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담에서 그랬듯이 이런 난점들을 애매한 채로 남겨 두고 농전4법을 해석의 방법론에 따라 체계화해 보면 아래와 같은 도식이 나온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체용론은 諸法의 존재 근거를 묻는 반성론적 시각에서 비롯된 이견들을 회피하는 방법이다. 四句는 異見들을 분류해 내는모든 논리적 경우(A, B〈또는 A〉,A @ B, A & B)를 포괄한다 이 두 방식을 통해 모든 가능한 이견들은 정리되고, 이 방식은 다시 無優로 해소되며, 圓顧한 法界로 긍정된다. 현담교체론에서는 이러한 해석을 매우 간결하게 처리해 버리고 있으며, 화엄교학의 핵심적인 전제들과 복잡하게 연결시키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능전4법의 교체문제가 본질적인 문제, 최후 근거로서의 法性의 문제로 환원되어 버리면, 협론적 논쟁의 하위개념~로 매몰되어 그 중요한 의의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현담이 애초에 교체론을 本性의 通局으로 양분했듯이, 화엄교학의 교체론은 긍정과 부정의 두 얼굴을 갖는다. 교학자체가 성립할 수 있었던 교리의 근거가 언어로 된 가르침인 경전에 있었기에 구체적인 교체론이 필요했지만, 해석된 교 리에 입각해 본정을 문제삼으면 언어의 효용은 망각되어진다. 이후에 전개되는 화엄교학의 교체론은 像用, 性相, 理事 등의 본성론적 개념들을 활용, 교체론의 이면에 담긴 형이상학적 논쟁을 회피하려는 노력으로 보여질 뿐이다. 이같은 해석이나 노력의 획실성은 깨달음이라는 별개의 문제로 넘겨져 교체론의 본래 의도를 확인할 걸 없는 관념적 논쟁으로 몰고가게 마련이다. 모든 이견들을 해결한 것처럼 기술하지만 다만 특정한 내용만을 수용했을 뿐이다. 言敎와 證智의 敎遺를 열어 독창적인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있지만 이 또한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이후로 전개되는
그 가능성마저 유식교학의 확대해석으로 유지된다. 이뭏든, 서로 다른 의도에서 시도된 전통적인 논쟁들에서, 교체론과 관련된 주제들을 추려 체계화시켰다는 점만으로도 화엄교학의 역할은 진일보한 것일 수 있다. 현담교체론을 이해하는 데 있어 구체적이고 유용한 측면들을 화엄교학의 본성론적 태도와 엄격히 구별해 내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상이 능전을 둘러싼 교체론의 전말이다. 다음호에는 所詮의 교체를 다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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