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지구의 의인, 사퐛


벌써 8년 전 일이다. 그때 나는 기적적으로 가자 지구에 들어가 2주 정도 머물면서 취재활동을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의 수장인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이 3월22일 이스라엘 정보국으로부터 암살을 당해 하마스의 본부가 있던 가자 지구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었다. 야신의 사망 직후 서방기자들이 가자 지구로 몰리기 시작했고, 나도 그들과 함께 들어가게 되었다.
그 당시 지인의 소개로 ‘사퐛’이라는 현지인 친구를 만나게 됐다. 사퐛은 팔레스타인인으로, 이탈리아어와 영어를 능숙하게 할 수 있는 현지 픽서 (기자의 인터뷰를 섭외하는 현지 가이드) 겸 저널리스트였다. 하마스 전당대회 및 다른 굵직한 뉴스가 소강상태를 보이자 다른 서방 기자들은 점점 가자 지구에서 떠나기 시작했지만 나는 계속 남아 있었다. 그 동안 가자 시내 중심가에서 데모가 열리게 되었다. 그 데모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하고 이라크를 응원하기 위해 열렸다.
나는 사퐛이 알려준 대로 가자 시청 앞 공원으로 갔고, 그 곳에는 또 다른 무장단체인 ‘이슬라믹 지하드 (이슬람의 성전)’ 요원들이 스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AK-47 (칼라슈니코프 소총) 을 들고 군중을 제압하고 있었다. 성난 군중들은 미국과 이스라엘 국기를 태우며 반 서방, 반 이스라엘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물론 그 장소에는 로이터나 게티 이미지 등지에서 고용한 현지인 사진기자들도 많이 와 있었고,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몸싸움을 벌였다. 주위는 구호 소리로 시끄러웠고, 사람들은 가운데 큰 철제 쓰레기통을 놓고 그곳에 불을 붙였다. 미국 성조기와 이스라엘의 다비드기에도 불을 붙이는 등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어느 정도 흘렀을까. 데모가 소강상태에 이르렀을 때 나는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배에 차고 있었던 가방에 손을 넣고 지갑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지갑이 손에 느껴지질 않았다.
다시금 가방 문을 열고 뒤져봤지만 지갑은 없었다. 갑자기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내 주변 길바닥을 계속 찾아봤는데도 지갑은 보이지 않았다. 내 지갑 안에는 어리석게도 그 당시 체류비의 대부분인 500 달러와 (그땐 정말 돈이 없었다) 미국 영주권, 크레디트 카드 등이 들어있었다. 배에 차는 가방은 지퍼가 아닌 ‘벌크로’라는, 소위 칙칙이로 돼 있어서 누군가 가방 뚜껑을 손 쉽게 열 수 있도록 돼 있었다. 이 무슨 낭패란 말인가! 그리고 바보같이 취재현장에 누가 현지에서 필요 없는 영주권이나 신용카드, 그리고 경비 대부분을 갖고 다닌단 말인가!
그 순간 사퐛이 보였다. 그가 마치 구세주처럼 보였다. 나는 울면서 말했다.
“사퐛, 지금 나 지갑을 도둑맞았어. 거기에 내 체류비도 있고 카드도 있는 데, 다 없어졌어. 난 큰일 났어. 어쩌면 좋지?”
사퐛은 내 얘기를 듣더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마도 관할 경찰이었던 것 같다. 그는 나를 진정시킨 다음 어떤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그 사무실은 경찰서였던 것 같지만 경찰들은 제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있었다. 나는 두 명의 팔레스타인 남성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군중이 혼란스러운 사이를 틈타 누군가 지갑을 훔친 것 같군요. 가방 문이 쉽게 열리도록 돼 있는 것을 보니 아이들이 한 짓 같습니다.” 그는 말했다.
“이런 일이 일어나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우리 팔레스타인의 수치입니다. 그리고 이곳 가자에서는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으니 카드에 대해서는 일단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최선을 다 해서 찾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그 분들께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한 뒤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날 사퐛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진, 너의 지갑을 찾았대. 그렇지만 돈은 없는 것 같으니까 기대는 하지마.”
사퐛과 나는 시위가 일어났던 시청 앞 공원 구석으로 갔다. 공원 관리인이 나의 지갑을 땅바닥에서 발견한 것이다. 바닥에는 나의 다른 카드들과 지갑이 널브러져 있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물론 현금은 다 없어졌다. 나의 지갑을 훔친 사람들이 현금만 갖고 나머지는 그냥 공원 구석에 버린 것이었다. 팔레스타인에서 신용카드가 전혀 사용되지 못했던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사퐛에게 거듭 감사의 뜻을 밝혔고, 그는 돈이 거의 바닥난 나를 위해 자신의 집에 며칠 나를 머물게 하는 친절을 베풀었다.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온, 아무것도 아닌 나를 위해 이렇듯 도움을 주다니! 그의 친절은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 관용이었다.
나는 지금도 사퐛이 나에게 해 준 말을 기억한다. “나는 비록 팔레스타인이지만 아라파트도 인터뷰 할 수 있고, 아리엘 샤론 (당시 이스라엘 총리)도 인터뷰할 수 있다.” 비록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사퐛이야말로 진정한 저널리스트이자 실천하는 이슬람 교도였던 것이다.


로그인 PC버전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개인정보취급방침

© GnuBoard Mobile G4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