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출하는 대중, 후퇴하는 종단-88년에 새로 생긴 불교운동 단체들

머리말
이제 88년도 한달 남짓 남겨놓고 모두 흘러갔다. 해마다 연말이 다가올수록 지난 일들을 회고해 보며 새해를 계획하게 된다. 올해의 불교계를 돌이켜보면 이 무렵에 흔히 듣는 ‘다사다난’ 이란 말 그대로이다. 그 어느 해보다도 많은 일이 생겼고 불자들의 활동도 역시 활발했다.
지난 해 12월 대통령선거 패배의 후유증으로 많은 국민이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던 올해 일월에서 삼월 사이에 불교계에서는 많은 단체가 새로이 탄생하였다. 그리고 5월 말에는 불재법이 폐지되고 그 명칭만 바꾸었다는 전통사찰보존법이 시행되어 하반기의 탈종, 창종사태의 근거가 되었다. 상반기에는 허가가 나오리라던 불교방송국은 불교계의 준비 부족과 운영주도권의 다툼으로 아직까지 진전이 없는 실정이다. 지난 ‘봉은사 폭력사태’는 잊을 만하면 터지는 종단 분규를 다시 한번 세인의 기억에 되살려 주었다. 봄부터 일기 시작한 통일운동의 기운은 뜨거운 여름에도 그 열기를 더했으며, 6월에는 임기 4년의 제9대 중앙종회의원이 선출되었다. 동국대학교는 이사 선출의 잡음이 끊이지 않더니, 학생들의 학원민주화 요구로 몇개월째 몸살을 앓고 있다.10월에는 서 의현 총무원장의 제도개혁안 발표를 계기로 때아닌 ‘제도개혁’ 공방전이 벌어졌다.
이런 가운데서도 자각한 많은 불교대중은 급속히 조직화되고 있다. 이는 사회의 일반적인 변화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더욱 중요한 원인은 그동안 불교운동이 축적한 성과이다. 이제, 올해 결성된 재야 불교단체들의 활동을 되돌아봄으로써 오늘의 불교현실을 재인식하고 우리의 갈 길을 재촉하는데 일조하고자 한다.

통일운동과 재야 통합 불교단체 탄생
올해 우리 사회는 올림픽을 계기로 공동올림픽쟁취투쟁과 남북한 민간인의 자주적 교류문제 등으로 통일운동이 한껏 고양되었다. 특히 청년 학생들의 국토종단순례 대행진과 체육대회 성사를 위한 6.10과 8.15 남북한 실무회담으로 온 나라안이 들끓었다. 그런데, 통일운동에 있어 청년학생을 빼고는 불교계가 가장 모범적으로 활동을 전개했다는 것이 재야운동권의 평가였다.
불교계의 통일운동은 5월 19일 결성된 「민족화합공동올림픽 추진 불교본부(약칭불교본부)」가 중심이 되어 공동올림픽 쟁취투쟁과 조선불교도 연맹과의 남북한공동법회를 추진했다. 불교본부는 “불자들의 민족종교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앞세워 민족통일의 그 날을 앞당기기 위해서” 라고 창립취지를 밝혔다. 가입단체는 기존의 민중불교운동단체로서 불교인에게 익숙한 정토승가회, 광주불교협의회, 승가대학생회, 동대 석림회, 불교도연합, 대불련 등이며 그외에도 대한불청 서울지구, 서울불청 조계사청년회, 대한밀교청년회 등 청년단체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불교본부는 성명서 발표, 유인물과 책자 발간, 두세번의 대중법회, 통일학교 개설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11월 14일 「민족자주통일불교 운동 협의회(약칭 통불협)」의 결성에 적극 참여키로 하면서 해체를 공식 선언했다. 불교본부의 성과나 의의로서는 광범위하게 잠재되어 있는 불교대중의 민족자주, 통일 의식을 드러낼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고 불교운동의 지평을 넓혔다는 것이다. 불교본부가 중심이 되어 추진한8.15남북불자 공동법회는 40여 단체와 사찰이 참여함으로써 매우 귀중한 성과를 남겼고, 앞으로 불교운동에서도 좋은 경험으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다.
통불협은 공동올림픽추진 불교 본부에 참여했던 10개단체 외에 민불련, 조계사거사회, 봉선사거사회, 동산반야회 등이 참여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통불협의 목적은 ①불교 혁신과 자주성 회복을 통한 불교중흥 ②외세로부터 민족자주성 구현 ③참된 민주주의 실현 ④통일된 민족공동체 구현이다. 통불협의 결성은 재야 불교운동의 방향이 민족자주 통일운동으로 자리잡혀 이를 전면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재야불교운동권이 통일운동의 열기를 한껏 고양하고 있는 가운데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은 6월 16일 종무회의를 통해 상설적인 「통일문제 특별기구」를 운영키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리고 WFB(세계 불교도 우의회)가 11월 19일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리는 제16차 「세계불교도대회」나 그 이전이라도 공동관심사를 논의하자고 제의하는 등에 자극받아 10월 1일 「남북불교도교류추진위원회」 준비위를 구성하여 11월 15일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조계종 전국신도회, 청년회 등 친부정적 성향이 강한 각급 단체 대표들로 정식 발족했다. 이 기구는 범불교계 대표인사들로 구성하여 불교계에서 명실상부한 대북한교류의 대표로 위상을 지우려 한 흔적이 크게 엿보인다. 그래서 통불협과의 관계로 관심은 끌고 있으며 현재로서는 서울 불교 청년회(회장 배 영진)만이 양기구에 모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상, 연대하는 불교청년운동, 불교여성운동

올 한해 불교계의 커다란 특징 중 하나는 청년운동의 부상이다. 불교본부에 기존의 유수한 청년단체가 참여한 것은 앞서 서술한 바 있다. 또 보도에 의하면 11월말경에는 종파를 초월한 「서울 지역 불교 청년 단체 협의회」를 결성키로 했다고 한다. 이 조직의 발의단체는 불교 본부에 가입한 단체 외에도 흥국사 녹야원 청년회가 있고 대불련은 서울지부가 참여하고 있다.
지난달 하순 대불청 서울지구는 ‘제2회 서울불교청년제’를 개최해 체육대회와 문화행사를 했으며, 대불련 서울 지부는 ‘불교문화제’ 등을 개최했다. 이미 2월부터는 ‘만해학교’가 개설되어 청년회 회원들의 교육장소로 운영되고 있다. 불광사. 개운사. 조계사, 미타사 등의 대학생회는 10월 22일 개운사에서 ‘10.27법난진상촉구연합법회’를 가졌다. 지난 8월에는 서울지구 청년회와 대학생회가 공동으로 ‘통일기원탑돌이’를 거행한바 있다.
이러한 것들은 이제 청년불자들이 각박한 조국과 불교의 현실 속에서 역사와 민족 그리고 불교 앞에 부끄럽지 않은 불자가 되어 한국불교의 올바른 자리매김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으로 해석된다. 일반 학생운동이 역사적으로 깊은 신뢰와 지지를 받으며 그 지위와 역할이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몇몇 대학 불교학생회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변화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던 불교청년학생운동이 이처럼 사찰에서 발전하고 있기에 그 값어치가 매우 큰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사찰의 신도회나 주지, 상직스님들은 기존의 청년회를 경시하는 운영 형태를 개선하고 있지 못하다. 젊고 진취적인 청년 학생불자들의 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성원을 기대하는 것이 청년 불자들의 한결같은 바램이다.
지난 8월 29일 조계종 여성봉사회, 대한불교부인회, 천태종 여성불교회, 관음종여성불교회 등 기존의 거의 모든 여성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전국여성불교연합회」가 창립되었다. 본 연합회는 여성불교회관 건립과 현대사회에 부응하는 생활 불교운동 전개, 여성불자의 권익향상과 의식개혁, 그리고 불교 여성의 조직적 강화 등이 창립취지와 목적이다. 본연합회는 창립 후 첫 행사로 11월 12일 임진각에서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통일 기원법회」를 가졌다.
조금 심하게 말해서 기존 여성불교운동이 여유있는 사람들의 사교장처럼 되어 온것을 부인키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한국불교 신자의 다수가 여성불자임에도 종단은 배려는 커녕 무관심과 심지어는 경시 풍조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여성불자들 역시 자신의 지위와 역할을 높이기 위한 제반활동이 부족했다. 어쨌든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기는 하지만 새로 창립된 「전국여성불교연합회」를 중심으로 하여 여성불교운동이 발전적으로 전개되기를 모든 불교인은 바라고 있다.

확대되는 교육, 연구, 출판, 문화운동
3월초 홍제동에서는 「한국불교 사회교육원」이 개원되었다. 불교이념의 사회화교육에 목적을 두고 개설한 본 교육원은 두차례의 두레 문화교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민족불교학당, 민족여성학교 등이 각각 제4기, 제2기가 진행중에 있다. 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주장하지 않는 불자는 없는데, 이를 체계적이고도 장기적으로 실천해온 집단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가운데 창립되어 의욕적인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오고 있는 본 교육원에 대한 불교인의 관심이 매우깊어 강좌당 수강생이 적어도 오륙십 명을 넘어서고 있다. 올 3월 25일에 창립된 대승불교승가회도 두차례에 걸쳐 참선, 다도, 교리 강좌를 실시했으며 「불교 전통문화원」도 서예, 다도, 경전강독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제2기 문화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4월9일 ‘불교사상의 현대화‘, ’불교의 사회화‘, ‘한국사회의 정토화’를 목표로「한국불교사회연구소」가 창립됐다. 본 연구소는 지난 5월부터 여섯 차례에 걸쳐 월례발표회를 가졌으며 그때마다 불교관계 신문에서 그내용을 요약해서 보도하곤했다.
88년에 새로 창간된 출판물도 꽤 많았으나 폐간되는 잡지도 있어 잡지를 아끼는 불교인을 안타깝게 했다. 4월에는 불교계에서는 처음으로 시사평론지 「숲과 나무」가 월간으로 창간되어 불교계의 기대를 모았으나 다섯권의 책을 내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발간이 중단되었다. 월간지 「하늘 개인날」도 통권 3호를 내고 자진 폐간했으며, 「월간 법회」가 4월호(통권 38호)를 내고 그 뒤로 나오고 있지 못하다. 한편 계간지 「불교문학」이 창간되어 봄, 여름, 가을호를 냈고, 지난 5월에는 주간 「법보신문」이 창간되어 대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기사의 비율을 높여서 계속 발간되고 있다. 또한 시사계간지 「민족불교(편집인 목우)」가 12월 중에 창간호를 선보일 예정이다.
아직까지는 불교출판문화 운동이 재정 부족, 얕은 독자층, 필진 부족 등의 문제로 난항을 거듭하고 있긴 하지만 각 분야에서 이러한 운동이 꾸준히 시도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불교인의 많은 관심과 참여가 요청되고 있다.

맺음말
지면 관계상 지난 2월 13일 창립한 교수불자연합회, 대숭불교연합회, 지난 8월 봉원사사태 후 기존 총무원과 종회는 해체되고 사부대중이 참가하는 새로운 종단구성을 주장하며 창립한 한국불교정풍회 등에 대해 따로 다루지 못함을 아쉽게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올해는 불교대중의 광범위하고도다 양한 활동이 그 어느해보다 많이 있었던 한해였다. 그러나 이를 수렴하고 발전시켜야 할 종단은 여전히 종권다툼과 주지 뺏기 싸움 등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불교 대중이 광범위하게 결집하는 자주적, 민주적 대표기구를 스스로 구성하고 있지도 못한 실정이다. 그래서 불교계는 더욱 혼란스럽고 체계가 안 잡혀 있다. 세계는 스스로 주인되게 살려는 자(집단)만의 것이라는 사실과 이 방법은 끝없는 정진(싸움)이라는 것을 우리는 지난 역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다. 지금의 종단으로서는 결코 불교를 자주화, 민주화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오직 많은 불교인들의 건강한 의식과 조직적인 힘으로만 이룰 수 있다. 우리 불교는 이러한 과정에 있다. 사부대중의 더욱 힘찬 정진을 서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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