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라장에 피는 꽃


장경판전에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아름다운 꽃이 피기 시작하였다. 이 꽃은 물이 없어도 태양만 있으면 아름다운 자태가 빛이 나며 많은 중생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어왔다. 이 꽃은 부끄러움이 많은지 일년에 두 번, 즉 낮과 밤이 길이가 같은 춘분과 추분에 가장 균형이 잡힌 완벽한 모습을 살포시 드러낸후 감춘다. 수다라장에 들어가면 우리는 가장 먼저 왼쪽의 흑백사진에 마음을 사로 잡히게 된다. 이 한 장의 사진에는 보안문을 지나서 수다라장에 모셔진 팔만대장경판과 천장에 인경하여 모셔 놓은 많은 경전을 향하여 한 스님이 마음을 다하여 예를 표하는 모습이다. 언제 누가 촬영을 하였는지 모르지만 이 한 장의 사진은 많은 사람들에게 판전에서 경건함을 느끼게 한다. 여기에 피는 꽃은 불교를 상징하는 연꽃이다. 연꽃이 불교의 상징이 된 유래를 살펴보면 ‘염화시중拈華示衆’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염화시중이란 부처님께서 인도의 영축산에서 많은 대중을 모아 놓고 설법을 하던 중에 ‘깨달음의 실체’를 보여주기 위해 문득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인 것을 말한다. 불교에서 ‘화華’는 연꽃을 뜻하는데, 염화시중은 바로 ‘대중에게 연꽃을 쥐어 보이다’는 뜻이 된다. 이 영축산 대중 법회를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고도 한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에 이른 그 진리를 말로서는 설명할 수 없어 연꽃을 들어 보인 것이다. 이 때 제자 중에 오직 마하가섭만이 이를 알아보고, 역시 그 깨달음을 말로서 대답할 수 없어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이를 ‘염화미소拈華微笑’라고 말하기도 하고, 마음과 마음으로 통한다는 뜻으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도 한다. 연꽃은 진흙이나 더러운 물에서 자라지만 결코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아름다운 꽃이다. 마치 부처님과 중생의 본성이 청정하여 세속에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하여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다. 즉 연꽃이 주변을 정화시키듯이 부처님은 이 세상을 정화시키시며, 연꽃이 더러움 속에 있지만 더러움에 때묻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본성도 그와 같다고 하여 소중히 여겨왔던 것이다. 연꽃의 또 한 가지 특징은 대개의 꽃들은 꽃이 피고 시들고 하는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열매를 맺는데 반하여 이 연꽃은 열매와 꽃이 동시에 생긴다. 꽃이 맺힐 때 그 꽃이 피기 전에 이미 꽃 속에 열매가 있다. 이와 같은 특성을 불교에서는 원인과 결과가 함께 존재하는 성불成佛의 이치와 같다고 보았다. 중생은 원인이요, 부처는 결과이다. 그런데 성불이란 중생 속에 이미 본래로 갖추어진 것을 확인하는 일이다.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일체중생(一切衆生)이 본래부터 모두 불성이 있다는 사상에서 볼 때 이 연꽃은 너무나도 닮았다. 이러한 연꽃에 대한 게송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다음과 같다. 처세간여허공處世間如虛空 여련화불착수如蓮華不着水 심청정초어피心淸淨超於彼 계수례무상존稽首禮無上尊 세간에 있으면서도 허공과 같고 연꽃에 물이 묻지 않음과 같이 마음이 청정해서 세간을 뛰어 넘은 위없는 부처님께 머리 숙여 절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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