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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즉일체 다즉일 一卽一切 多卽一 일미진중 함시방 一微塵中 含十方. 일一과 다多의 관계설정이 총림 운영의 묘다.
그 하나는 물론 법이고 이념이다. 다多는 대중이고 다양한 수행 방법이다. 총림의 구조는 선원, 강원, 율원, 염불원 등이 하나의 장에서 공존하고 있다. 문제의 관건은 이러한 다양성을 하나의 끈으로 엮는 이념이나 운영이다. 그러나 이번에 해인사에서 있었던 일은 이념의 문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문제는 총림이라는 원융살림의 파괴에 있었다.
조계종은 선종이다. 그러나 한국 불교의 전통을 이어받은 통불교적인 성격이 강하다. 총림이라는 조직 역시 이념체로서는 한계가 있고, 오히려 정화라는 역사적인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념의 실현은 아니더라도 총림의 역할이나 기능만이라도 유지된다면 하는 바람이다.
총림은 교육의 장이다. 종법에도 총림의 설립조건에 선원, 강원 등의 두 개 이상의 교육 기관을 갖추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총림은 교육의 장이라는 기능이나 역할도 있지만, 중앙의 통제로부터 벗어난 자치구라는 또 하나의 성격도 있다. 자치구로서 이러한 성격 역시 문제의 소지를 가지고 있다. 총림법과 본 말사법의 상충,총림이 이념의 실현이나 교육의 장이라는 기능보다 자치구라는 데 더 많은 의미가 주어지고 있다.
일파만파一波萬波다. 문제의 발단은 가야산 골프장반대에서 시작하여 강원의 폐강, 선원의 폐쇄에까지 이르게 되고, 주지 이하 소임자들의 퇴진 요구에서, 급기야는 방장 스님의 사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바람의 영향이 어디까지 갈지는 모른다. 바람을 맞는 입장에 따라 파도의 성격은 다양하다. 이러한 파장은 해인사가 한국불교에서 갖는 위상이나 성격들 때문이다.
해인사는 정화 이후 한국불교의 상징이고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총림이라는 승가공동체의 원융한 살림의 모범이었다.
총림의 체제는 봉건적인 제도이다. 교육의 제도 역시 수직적인 체계이다. 이러한 봉건적이고 수직적인 제도와 대중들의 수평적인 사고나 태도 사이에서 발생되는 갈등들이 있을 수 있다. 입장에 따라 총림이니까 가능한 일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총림이니까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있다.
해인사는 전통과 관습에 의하여 움직여진다. 봉건적이고 수직적인 구조와 관습법에 의해 움직이는 보수적인 집단이다. 이러한 보수적인 입장이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는데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후방의 보루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해인사는 다른 총림과는 달리 여러 문중과 많은 대중이 한산중에 살고 있다. 관습법적인 질서나 대중의 생활에서는 특이한 재능을 살리거나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아마 대중의 정서가 바뀌기 전에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갈등의 요인은 과거의 꿈, 관습법과 실증법의 차이 그리고 대중의 정서 사이의 긴장관계에 있다.
이번 해인사 대중들의 요구는 단순히 파행적인 종무행정에 대한 시정이었다. 그러나 사태의 진행 과정에서 문중과의 관계, 총무원의 입장, 다른 총림이나 본사 등의 입장이나 시각들의 차이가 전 종단적인 문제로 확대되게 된 원인이다.
문중과의 관계는 가장 현실적인 부분이지만, 대중들의 뜻과는 관계없는 결과론적인 이야기이다. 물론 사건 자체가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그러나 문제는 원인 제공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총무원은 개혁의 결과로서 탄생된 집행부이다. 개혁의 공과를 논하기보다 개혁의 의지를 살려 끊임 없는 개혁의 개혁을 부탁드리고 싶다. 개혁을 위한 진보와 보수의 개념이라면 더 이상 거론할 것도 없다. 이미 진보와 보수라는 구분 개념은 사라졌다. 또 이번 사태는 이념을 위한 것도, 제도의 변화를 위한 시도도 아니였다. 인물에 대한 평가라면 대중의 판단에 맞겨야 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위계 질서의 파괴이다. 이것은 우려가 아니라 오히려 축복이다. 관습법보다 실증법이 강화되고 있지만 그 법 역시 합리적인 운영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법의 준수를 강조하기보다는 대중이 살아있다는 것은 또 하나의 희망이라고 볼 수
있다.
총림에 희망이 있는가. 불교적인 새로운 이념의 창조나 실현이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희망은 없다. 방장이 안목있는 법의 집행자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그러나 바랄 수 있는 것은 자치구로서 총림의 합리적인 운영자만 되어도 족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둘다 여의치는 못하다. 그래서 나오는 말들이 방장직과 종무 운영의 분할이다. 현실적으로 대중의 요청이기도 하고 종법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 같다. 집단으로서의 불교라면 가장 시급한 것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편입이다. 이미 사회는 자본주의화 되었고 개인도 자
본주의에 길들여졌지만, 절집의 제도는 봉건주의적인 조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능면에서 본다면 가장 비효율적인 집단이다. 이러한 기능면을 보완하는 것이 힘의 집중과 기능의 분화다. 힘의 집중이나 기능의 분화는 법이나 통제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양한 방법에 대한 모색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공통의 목표나 방법들이 합의되고 더 큰 틀이 형성되기 전에는 혼란이나 행착오가 계속될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총림에 바랄 수 있는 것은 합리적인 운영, 아니면 잘해야 공정분배 정도다. 합리적인 운영을 위한 방법중의 하나가 방장이라는 상징성과 종무행정의 분할이다. 또 하나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은 대중의 합의를 유도할 수 있는 합의체의 구성이다. 전통이나 실증법이 갖는 확실성보다는 불확실하지만 급변하는 시대나 상황에 대처하는 유용한 하나의 방법이다.
이번 해인사 사태를 지켜보면서 느끼는 것의 하나는 이것이다. 일의 전개 과정에서는 그 의미의 포괄성이 전종단적이었지만 총림의 모든 부분들이 제자리를 찾은 지금은 그 전개 과정의 포괄성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전개 과정이 종단적인 차원의 포괄성을 가진다면 수습과정은 절집 내부의 문제로 자기 회귀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제 바야흐로 산중 대중 전체의 뜻이 존중되고 실현되어야 할 때이다. 산중 전체의 뜻이 종중되어야 할 지금 산중 공의가 종단에 의해 수용되지 못한다면 해인사는 또 한번 갈등이라는 구조의 덫에 걸려 어두운 시간을 갖게 되고야말 것이다. 그것은 해인사뿐만 아니라 한국 불교 전체에 커다란 불행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불교는 누차에 걸쳐 자기 상처의 시간을 가져왔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종무행정의 책임자들이 대중의 뜻에 겸허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소임이라는 것이 대중에 어떠한 자세와 위치에 있는 것인지 이번의 해인사 사태는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소임자가대중의 상층부에 군림하고자 할 때 대중과의 갈등의 고리는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소임자가 소임본래 의미를 저버린 결과의 당연한 귀결이다. 소임자는 대중을 시봉한다는 소임 본래의 의미에 겸허해야만 한다. 소임자는 대중의 관리자가 아니고 대중을 시봉하고 외호하는 것을 그 본래의 업으로 삼아야 한다. 대중의 관리는 대중의 뜻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중은 한 사람이나 몇몇 소임자에 의해 관리되는 것이 아니고 대중 전체의 의지와 뜻에 의해서만 조절되고 통제되는 아름다운 자기 기능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대중의 뜻을 존중해야 하는 것도 그것이 가장 자율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의 척도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해인사 대중은 이번의 사건을 통하여 대중이 진정무엇을 원하고 대중이 총림의 운영에 대한 의지가 어떠한지를 전 종단적으로 여실히 표현했다. 대중이 주가 되고 원용한 살림이 전제가 되는 총림이 가장 이상적인 총림이라는 총림의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 주었다고생각한다. 이것은 한국 불교사에 새로운 가치의 획을 긋는 중요한 일이었다 누군가 나서서 전형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서 해인사 대중은 두려움없이 그 전형을 제시했다고 믿고 있다. 이름은 총림이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총림일 수 없는 한국불교의 현 상황을 발전적으로 극복한 해인사 대중의 뜻이 가진 바 의미는 실로 지대한 것이다.
대중의 뜻은 언제나 존중되어야 한다. 그것은 어떠한 상황적 논리보다 우선되어야 하고 어떠한 이해 관계보다도 존중되어야 한다. 대중의 뜻이 굴절없이 수용되는 것만이 절 집이 아름다운 공동체로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올바른 총림을 가꾸기 위해 우리는 긴 아픔의 시간을 가져왔다.
한산중의 최고 어른이 사퇴하실 때 우리 대중 모두는 숙연해야만 했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하는 긴 자성의 소리도 들어야만 했다.
실로 그것은 아픔이었고 우리 모두의 슬픔이기도 했다. 하지만 발전의 논리는 때로 비정을 요구한다. 한때의 아픔에 의연하지 않으면 총림의 원융살림과 대중 전체의 의지가 그 활로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비정을 감수해야 했던 시간들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긴 시간이었다.
흔히 외부에서는 방장 스님의 사퇴와 관련하여 해인사 대중에 대하여 맹목적인 비난을 퍼붓기도 하지만 우리 해인사 대중은 그 누구보다도 절실한 아픔의 체험자들이었다. 단지 방장 스님이 사퇴한 것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총림의 전 대중이 왜 그토록 아픈 선택을 해야만 했었는지에 관해 진지한 사고가 있기를 우리는 바라고 있다. 아픔을 전제로 한 우리들의 선택이 원융살림의 구현체로서의 총림을 다시 회복하리라 믿는다. 그 때 우리를 비난하던 그 목소리들도 긴 아픔의 신간을 견뎌야만 했던 우리 해인 총림의 대중의 인고의 노력도 모두 결실을 맺으리라. 해인사! 그 이름은 우리 모두에게는 추억과 꿈의 상징으로 떠오른다. 그 곳에 가면 여러 노스님과 많은 대중과 함께 대중살이의 기쁨을 수수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어디에 있어도 우리는 언제나 해인사의 그늘 속에 발목을 담글 수 있었다. 대중의 일원으로 돌아가도 언제나 떳떳하고 따뜻하게 등을 기댈 수 있는곳이 바로 해인사 아니던가. 해인사는 그만큼 대중이 살아있고 법도가 살아있고 상식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해인사여! 이제 긴 아픔의 시간을 딛고 아름다운 원융살림으로 크게 일어나 멀리 전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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