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목계牧谿, <약산과 이고의 문답(藥山李翶問答圖軸)>, 남송(13세기), 종이에 수묵, 31.2×84.1㎝,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말로 설명될 수 없는 우주 만물의 진리에 ‘도道’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 노자老子로부터 시작 되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무게감 있고 특별한 용어였던 ‘도道’가 이제는 거의 모든 곳에서 사용되다 못해 개그프로에서까지 일반화된 말이 되었지만, 그래도 도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대답이 군색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내 경우는 한 글에서 “하늘과 땅의 해와 달과 별의 길(天地日月星辰之道也)”라는 구절을 본 후로는 어렴풋이 짐작은 가는 듯하다. 노자가 도를 이야기 한 이래 도는 도교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학문과 종교의 지향점이 되었다. 유학자들은 자신들을 가리켜 도학자道學者라고 하였고, 불교에서도 궁극의 깨달음을 도라고 이름하였다. 그래서 역대 선사들에게 가장 많이 묻는 것이 바로 “도는 무엇입니까.”이다. 당말 유명한 문인인 이고(李翺, 772~841)는 문장가이자 유학자로 유명한 한유(韓愈, 768~824) 의 제자였다. 한유는 도통道統의 관념을 이야기 하였지만 노자와 석가를 모두 배척하고 유교정신으로 철저하게 무장했던 사람이다. 반면 그의 제자였던 이고는 불교사상을 채택하여 자신의 심성心性의 이론을 완성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송대의 유, 불, 선의 교류와 융합은 당말 이고와 같은 문인들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가 여주자사廬州刺使로 좌천되었을 때, 약산유엄藥山惟嚴 선사를 찾아갔다. 약산유엄 선사는 첨엔 본 척 만 척 하다가 그를 맞았다. 이고가 물었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그러자 약산 선사는 손으로 하늘과 책상 앞 물병을 말없이 가리켰다. 이고는 무슨 말인지 잠시 침묵을 하고 있었는데, ‘고개를 들건 숙이던 숨길 곳이 없고,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병 속에 있네 (低頭仰面無藏處 雲在靑天水在甁)’라는 게송으로 답이 돌아왔다. 그때서야 이고는 그 뜻을 알고 선사께 예를 올리고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화답하였다. ‘몸의 모습은 학과 같고, 천 그루 소나무 아래 두 상자의 경전, 내가 와서 도를 물으니 다른 말은 하지 않고,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병에 있다 하시는구나(鍊得身形似鶴形 千株松下兩函經 我來聞道無餘設 雲在靑天水在甁).’ 이 게송을 계기로 이고는 약산 선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고 전한다. 그때의 광경을 그린 것이 목계牧谿의 작품으로 알려진 <약산과 이고의 문답(藥山李翶問答圖)>이다. 화면 오른쪽에 선사는 고목이 된 소나무 숲 아래 앉아 있고, 여주자사의 관직을 보여주듯 관복을 입은 이고가 허리를 굽히고 무엇인가를 구하고 있다. 선사 앞에는 게송 속 경함經函으로 보임직한 상자와 정병 모양의 물병이 그려져 있다. 매우 마른 붓질로 듬성듬성 그린 그림인데, 갈필로 듬성듬성 그렸어도 인물의 특징을 정확하게 잡아내는 목계의 화풍에 비추어 볼 때는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라서, 시대는 비록 같은 남송대라 할지라도 목계의 진작으로 보기엔 좀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인물의 표현이야 어떻든지간에 그때의 정황만큼은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그림까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불교와 유교의 교류라는 측면에서는 이 두 위인의 만남은 자못 상징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약산 유엄으로 말하자면 육조 혜능스님의 직계 손상좌 쯤 되는 그러니까 당시 최고의 고승인 석두희천石頭希遷 스님의 수제자로 당시 불교계를 상징하는 인물이며, 이고는 신유학의 태두인 한유의 제자로 당시 유학을 대표하는 선수임에 틀림없으니 말이다. 손뼉도 서로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병 속에 있네” 한 구절로 서로 마음이 통하는 것도 고수들 사이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결국 같은 물인데 하늘에 있는 것은 구름이 되고, 병 속에 있는 것은 감로수가 되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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