ㅂ .생겨난 신뢰감 곁에 있는 사람을 시켜 급히 아들을 잡아오게 한 것에 비유된 화엄경의 설법이, 부처님의 깨달음 그대로를 내보이신 점에서 더없이 높은 가르침이긴 하면서도 중생의 근기와의 엄청난 거리 때문에 이렇다 할 효과 없이 끝났던 것과는 달리, 똥을 치우게 하신 것에 해당하는 녹원시의 가르침(아함경)은 처음부터 근기에 맞추신 교화인 점에서 비상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리하여 불교는 비로소 그 기초를 정립(定立)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나,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똥만 치우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만일 이 차원에서 교화가 멈춘다면 아들(중생)에 대한 모독이 될 뿐 아니라, 오직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밝히기 위해 세상에 출현하셨다는 소위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도 한낱 구호에 불과한 것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다음 단계에서는 가르침을 보다 높은 데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으셨으니, 똥 치우는 일이 20년을 넘어서자 “마음 서로 통하여 믿게끔 되어 들고 남을 어려워하지 아니했으나, 살기는 아직도 옛거처이더이다.”라 함이 새로 나타난 교상(敎相)이었다. ‘마음 서로 통하여 믿게끔 되어’의 원어는 심상체신(心相體信)인 바, 체(體)에는 친(親) ·찰(察)의 뜻이 있으므로 ‘마음이 서로 이해해 믿게 된다’의 취지라 하리니, 오래 함께 생활하는 동안에 서로 신뢰감이 생겨났음을 이르는 말이다. 비유에서 볼 때에는 열심히 똥을 치우자 약속대로 품삵을 얻을 수 있었으므로 주인을 믿는 마음이 생긴 것이 되고, 교학(敎學)에서라면 번뇌를 제거하는 것에 의해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의 깨달음이 얻어졌으므로 부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생긴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천태대사는 이것을 오시(五時)의 셋째인 방등시(方等時)라 단정했으니, 그 근거는 어디에 있었던가. 방등시에 해당하는 것으로 열거된 것은 유마경 ·승만경 ·사익경 ·금광명경 등이거니와,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유마경이니, 대승을 찬양하고 소승을 깎아내린 것이 그 설상(說相)이다. 곧 화엄경이 순수한 대승이요 아함경은 순수한 소승이었던 것과는 달리, 여기서는 대소승을 대립시켜 비교·검토하는 것에 의해 대승은 위대하고 소승은 열등하다는 결론을 이끌어 냄이 그것이었다. 그래서 사리불(舍利佛)을 비롯한 대제자들은 성불할 가능성이 없다 하여, 종자로 치면 불에 탄 것이나 썩은 것에 해당한다 하여 초종(焦種)이니 패종(敗種)이니 하는 혹평을 들었다. 사리불 따위 대제자들은 부처님에 의해 친히 인가된 성자들이매 이렇게 확실한 성자는 있을 수 없는 터이나, 그러면서도 형편없는 대접을 받았으므로 솔직히 말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보살’이라는 새로운 이상을 표방하면서 등장한 대승 쪽에서는 이렇게 보이는 일면이 있었을 것이고, 이러한 대승의 입장을 그대로 궁정하고 들어갈때에 눈에 띄는 특징의 하나는 그런 배격을 당하면서도 사리불 따위 대제자들이 조금도 저항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모두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심상체신’이라는 말로 표현된 절대적 신뢰감이니, 부처님에 대한 흕들림 없는 신뢰가 없었던들 자기의 깨달음을 일거에 부정당함에 미쳐 어떻게 이러할 수 있었겠는가. 심상체신이 방등시의 일로 해석된 근거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들고 남을 어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함이 대승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음을 이르고, ‘살기는 아직도 옛거처였다’ 함이 그러면서도 여전히 소승에 머물러 있었음을 뜻할 것은 물론이다. 한마디로 말해 대소승이 대립해 소승이 배격된 시기가 방등시여서, 불교의 패권이 대승쪽으로 옮아가기 위하여는 필연적으로 겪지 않으면 안될 과정이었다 하면 된다. 그리고 이미 대승불교의 넓은 시야(視野)가 나타난 점에서 평지(平地)에 비유되나 아직도 대낮의 투명한 밝음에는 이르지 못한 때니, 일광삼조(日光三照)에서 보기에는 고산을 비추고 유곡을 비추던 해가 명지를 처음으로 비추기 시작하는 오전 8시(食時)에 해당한다. ㅅ. 재산의 관리자 그러면 다음 단계의 교화는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병이 나서 죽음이 멀지 않음을 안 장자는 이렇게 아들에게 말했다고 경은 기술하고 있다. “내 이채 금은(金銀)·진보(珍寶) 많이 있어서 창고마다 가득하니, 많고 적음과 받을 것, 줄 것을 너 모두 알아두라. 내 마음 이 같으니, 이 뜻을 이해하라. 어째서이뇨. 이제 나와 너 한몸이나 다름 없으니, 부디 조심하여 잃어버림 없게 하라.” 그리고 이 글에 이어, 아들의 움직임을 이같이 전하고 있다. “그때, 아들은 곧 분부받아 모든 재물, 금은·진보와 여러 창고를 다스리게 되었으되, 한 끼를 때울 돈을 가로챌 뜻 없었고, 그러면서 살기는 아직 옛거처며, 열등한 마음 버리더니… .” 결국 온갖 재산의 관리자가 되었으나, 관리자에 불과하다는 자각 탓에 그 재산이 제 것이라는 따위의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는 무엇을 말함인가 먼저 장자의 끝없다는 재산부터 생각해 보자. 부처님과 범부는 빈부의 개념을 달리하니, 범부들이 물질의 양으로 빈부를 논하는 데 대해 부처님은 정신 쪽에 입각해서 빈부를 구별하시는 까닭이다. 그러기에 송곳 하나 꽂을 땅도 못 가지신 점에서 세속적 기준으로는 극빈자 중의 극빈자이신 부처님이, 정신적 면에서는 무진장한 재물을 지닌 대부호가 되시는 것이어서, 그 비길 데 없는 대부호인 까닭은 무엇을 많이 가시신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간에 추호도 소유함이 없으시다는 점에 있으시니, 공을 완벽하게 체득하신 반야의 지혜가 그것이다. 공인 까닭에 아무 것도 없는것이 아니라 도리어 온갖 것이 있게 되며,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공인 까닭에 공으로 돌아오는 것이어서, 공에 서셨기에 팔만대장경을 설하시며, 또 그러기에 팔만대장경을 불설일자(佛說一字)로 돌릴 수 있으신 것이다. 이런 공의 불가사의한 묘용(妙用)에 생각이 미치면, 끝없다는 ‘금은·진보’가 공에서 나옴이 ‘줄 것을 알아두라’는 말씀이요, 그것이 다시공으로 돌아감이 ‘받을 것을 알아 두라’는 말씀인 줄을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이쯤되면, 이것이 오시(五時)의 넷째인 반야시(般若時)라 해석된 것에 대해 누구나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니, 곧 반야경이 설해진 시기다. 반야경이란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이라 봄이 옳다. 같은 반야경 중에서도 금강경은 공을 주로 보시와의 관련에서 보고 있는데 그치고, 반야심경은 대품반야경의 발췌(拔萃)에 지나지 않는데 비해, 공을 광범위하고 철저하게 파헤쳐서 불교 안의 온갖 도리를 반야바라밀로 지양시킨 것은 대품반야경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소승의 사념처(四念處) 따위 삼십칠도품(三十七道品)은 다 대승임이 되고 무명 따위 번뇌는 보리임이 밝혀졌으므로, 이승(二乘)과 보살승(대승)의 차별은 일단 없어졌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법문에 대한 이론상의 이해에 그치므로 법개회(法開會)라 이르니, 그런 법개회를 보이는 것으로서 전교(轉敎)라는 사실이 있다. 전교란 부처님의 분부를 받아 소승인 성자가 대승의 보살에게 법을 설함을 이른다. 이는 오직 대품반야경에만 있는 일인데, 수보리 따위 아라한이 보살을 향해 대승의 법문을 설하는 장면이 매우 많이 나온다. 경의 설명으로는 부처님의 가피를 입었기 때문인 것으로 되어 있으나, 자력적(自力的)으로 보면 ‘수행’인 것이 타력적(他力的)으로 볼 때는 ‘가피’로 받아들여져 필경 가피와 수행은 하나이므로, 소승이던 사람에게 대승의 진리가 이해되었기에 보살들에게 설법할수 있는 것이라 봄이 옳다. 그러나 이것은 앞에서도 했듯 이론적 이해에 그치매, 도리로서는 삼승의 하나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곧 보살임을 믿지 못하는 단계니, 온갖 재물을 관리하면서도 ‘한 끼를 때울 돈도 가로챌 뜻 없었다’든가 ‘그러면서 살기는 아직 옛거처였다’든가 하는 비유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 일광삼조의 비유에서 볼 때는 고산·유곡에 이어 평지를 비추는 햇빛에서, 이른 아침의 시간이 대승이 처음으로 나타난 방등시였던 것에 비해, 이것을 10시쯤의 광명이라 보다 밝아서 정오의 완전한 밝음에 바짝 다가선 시기라 할 수 있으니, 공을 끝없는 깊이로 파헤치는 것에 의해 설해질 것은 다 설해지고, 오직 인개회(人開會)만을 남겨둔 단계라 하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