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의 족적(足跡)

바캉스라는 산과 바다를 향한 음모가 해제된 지금, 찢겨진 부채가 마지막 더위를 힘겹게 건져 올리고 있다.
이제 온 몸으로 흔들렸던 한 여름 밤낮의 춤은 꿈으로 접어서 불시착한 마지막 더위와 함께 가슴 속에 묻을 것이다.
한때는 허공을 가르고 태양을 가리우며 사람들의 사량을 한 몸에 받았던 부채여, 다시 한번 크게 흔들며 역사의 책 갈피를 700년 쯤의 과거로 돌려다오 한 사람의 발바닥이 몹시 보고 싶다.

제주시(濟州市)에서 서쪽으로 30분쯤 달리다 보면 하귀(下貴)라는 마을이 있다. 하귀(下貴)에서 걸어 10분쯤 상귀 쪽으로 올라가면 항몽 유적지로서 문화재(文化財)로 지정된 항파두리성이 나온다. 몽고의 침입에 항복,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환도한 조정의 처사에 불복 항전하다가 최후를 마친 삼별초)의 유적지다. 내부는 석성(石城)으로, 외부는 토성(土城)으로 이중장벽을 쌓고 궁궐과 관아까지 갖춘 이곳은 아마 공식적으로 최초의 망명정부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지금은 토성(土城)만이 쓸쓸히 남아 항몽의 역사를 꼬리부분만 드러내 보인다. 그 토성아래 장수(將帥)물이라 해서 아담한 샘이 있다. 바로 이 성에서 끝까지 삼별초의 남은 병력을 이끌고 분전하다 순의한 김통정 장군의 발자국이다. 전설은 이렇게 전한다. 장군이 여몽 연합군과 대항해 싸우시다가 성벽에서 뛰어내리셨는데 패인 발자국서 맑은 샘물이 솟아났다는 것이다. 전설의 황당함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살아서는 어느 곳을 밟아야 하며 죽어서는 어떤 발자취를 남겨야 하는가 발자국을 남긴 자리에 정갈한 샘 하나 솟게 한 것은 그 물을 마실 때마다 외세에 대항해 온몸으로 산화해버린 자신들을 기억해 달라는 것인가.
발디딤의 법도와 그 울림을 통해 몽고군과 합세해 토벌하러 온 고려 조정의 군사들에게 그 생물을 마시게 함으로써 이 땅이 다시는 외세에 의해 유련 당하지 않도록, 같은 민족끼리 목숨을 앗는 일이 없도록 깨우쳐 주기 위함인가 정작 발바닥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시공(時空)과 피채彼此)를 분별하지 않고 목마른 생명들에 물 한 모금 적셔주고자 함이었을지 모른다.
오늘 우리의 발바닥은 어느 곳을 딛고 서 있는 자 교조 석가모니는 사바에 족적을 드리운 이래로 발자국마다 자비의 장과 인욕의 장, 감로의 장과 화해의 장을 깊은 자국으로 남기셨다. 그 발디딤의 순정함 때문에 발의 문양이 그토록 아름답고 상서로운 것이 아닐까. 발에 경배하는 의식의 일단에는 발디딤의 엄격함과 위대함이 함께 있는 것이다.
문득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교계의 동정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잘못된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지 모른다. 종권(宗權)다툼이라 하는데, 도대체 출가인(出家)시의 권력(權力)이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사회적(社會的)인 삶이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쌓아가는 구조라면 출가의 삶은 부단히 비워내는 구조다. 이 양자의 바른 조명과 균형으로 인해서 상반되는 삶의 구조가 올바른 자리 매김의 가치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서로가 본래적엔 자기 모습을 상실해 버리고 한쪽을 닮아간다면 견제를 통한 자기확인이 망실돼버리는 것이다. 종권이랍시고 그것을 잡기 위해 권력자들의 문직방이 앓도록 넘나들며 스스로를 파괴해가는 모습을 보면, 부처님 발바닥의 문양이 부끄러워 석상으로서 있고 싶은 심정이다. 장수물을 마시기가 죄송스럽다.
조고각하(照顧聯下).익올 것들은 마음껏 익고 피어날 것은 한층 더 곧아지는 이때, 장군의 발바닥에 고인 샘물을 길러 자리끼로 놔두고 싶다. 한밤중에 일어나 한 여름내 수난을 당했던 바다의 숨소리를 들으며 한 모금 마시고 싶다. 흘러 바다의 어디쯤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을 이 작은 샘물이 구름 되어 비 되어 다시 맑은 가을 물이 되기 생각하며.
갈꽃옆 해오라기 가을 물이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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