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이것은 비단 몇몇 사찰에 한하는 풍경일 수만은 없겠지만 해젯날 아침 해인사의 일주문은 바랑을 멘 스님들의 길떠남으로 부산하다.
밤새 내린 비로 희끗희끗하던 산비탈의 잔설도, 꽁꽁 얼어붙었던 계곡의 물소리도 다시 목청을 가다듬듯 또랑또랑한 말씀들로 분주하고, 겨우내 매서운 삭풍에 휘어지고 꺾여지던 나뭇가지들도 새삼 훤출해 뵈며 아직은 쌉상하지만 비개인 뒤의 햇빛에 작은 심호흡들을 하는듯만 하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산문밖 멀리로 총총히 사라지는 스님들의 뒷모습이 황망하게도, 고즈녁한 봄기운으로 짚여지기도 하다. 사실, 겨울 한철이란 기간동안 엄격한 규율과 단체 생활속에서 배겨낸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존경의 예를 받을만하지 싶다. 굳이 요즘의 현란한 세속적 풍토를 속속들이 모른다 하더라도 말이다.
석달 동안 접었던 다리를 풀고 떠날 수 있는 해젯날은 그래서 그들에게 한층 더 설렘과 훌가분한 발걸음이 되지 않을 수 없겠다. 흔히 하는 말마따나 오라는 데도 그렇다고 중뿔나게 꼭이 가야할 곳도 없는 그들이지만 그렇게들 그냥 황망히 떠나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록 독한 마음을 먹고 세속적 삶을 떠나 머리깎은 수도승들이라 하지만 그들의 가슴속 언저리엔들 어찌 인간적 향수가 없을 것이며, 만행(萬行)의 무정처의 그 막연함 앞에서 휘청거리며 따뜻한 불빛 한줄기 새어나오는 울타리 주위를 서성거리는 오뇌의 순간인들 없겠는가. 그들의 멀어져가는 뒷모습은 한편 비장하게도 출중해 보이기까지 하나 끝내 목울대로 치솟는 한덩이의 뜨거움을 되삼키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어인 심사에선지.
저렇게 표표히 길을 나서는 납승(納僧)들에겐 집이 없다. 돈과 결부된 삶을 살지않기 때문에 돈이 없다. 거두어주는 이가 따로 없기에 몸엔 병이 항상 할 수 있다. 그들은 그런 자질구레한 것들을 애시당초 계산에 넣지않고 절집안에 들어왔다. 아니, 그러한 제도적 조치마저도 필요치 않을만큼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오로지 열렬한 신심과 구도심으로 입산을 결행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의 절집안 풍토로 미루어 짐작컨대 저들은 그야말로 빈손 빈몸들일 수 밖에 없는 처지다. 누구를 위하는 중노릇도 아니고, 그런 것들을 보장받고자한 것은 더더욱 아닐 테지만 진리를 찾아 좋은 벗들이 모인 곳이 바로 승단이라 이름할 때 너무도 많은 변질과 전도된 풍토가 아닐 수 없겠다. 세속 인연을 끊고 꺼칠한 바람에 잿빛 옷깃을 날리며 떠돌다 중병을 얻어 다시 하산해야 했던 젊은 스님들의 좌절과 한숨들이 요즘의 절집안 사정과 다름아님에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앞서 세상이 많이도 변했듯이 우리 절집안 풍토 또한 그에 못지않게 변해버렸다. 중노릇하는 방법에서뿐 아니라 중노릇에 대한 가치나 의식들마저 왜곡되고 변질되어 우울케 한다. 많은 스님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개인주의적 사고와 자신의 안위에 급급하는 기색들이 너무도 노골화되다 못해 당연시되고 있으니 차츰 뜻있는 수도승들은 그 어떤 연고나 타문중으론, 내돌림을 받아 방 한 칸도 얻어 지낼 수 없는 현실의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어찌 한심한 풍토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물론 구조적인 모순도 개선 파기되어야겠지만 우리 승려들 개개인이 안고있는 불철저함에 먼저 따지고 꾸짖는 자기 자신들의 투철한 구도적(求道的) 삶을 실현해 나기는 노력들이 선행되어져야 하리라 싶다. 그렇다고 오늘날 우리의 중노릇이, 옛날 스님네들처럼 옷이나 기워입고 먹는 것에 신경쓰는 따위의 짓을 고집하는데 중노릇의 참뜻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진정 우리가 추구해야하고 그 어떤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끝까지 부둥켜안고 고집스레 붙들고 싸워야하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의 거짓됨이나 적당한 타협들일 것이다. 따
라서 우리가 못내 두려워하고 한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하리라. 곧 뱀이 허물을 벗어버리듯 끝없는 자기 부정과 함께 어느 하루도 안주함에 도착되지 말아야 함을.
수행자의 길이 특정하게 정해놓은 곳이 없듯 끝나는 곳 또한 있을 수 없는 것이라 생각된다. 열반마저도 극복되어져야 할 곳이지 절대지점은 아닐 것이다. 끝없는 실천궁행의 감연한 다짐으로 길나섬에 우리의 용기는 필요하다. 수행자에 있어 모든 것은 부정 극복되어져야 하며 있는 것은 오직 자유와 자비의 두 날개뿐. 요즘 절집안에 노장님들을 뵙기가 힘든 것은 중노릇이 그만큼 어렵고 힘든 증좌인지도 모른다.
해제를 하여 봄 햇살과 그 어느 길 모퉁이를 돌아 대처를 걷고 있을 이들이여, 담넘어 빨랫줄에 걸련 한 가족의 단란한 옷들에서도 인간적인 잔잔한 친애를 느낄 해맑은 젊은 수행자들이여. 무소의 뿔처럼 결코 혼자 가기를 포기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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