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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축년丁丑年, 바꾸어 말해 소해이다. 띠를 나타내는 열두 짐승 가운데 불교와 연관지어 이야기 되지 않는 짐승이 있겠는가만은 소처럼 많은 소재와 상징으로 원용되는 짐승도 드물 것이다. 어느 사찰을 가든 쉽게 볼 수 있는 ‘심우도’가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열 장으로 나누어져 있는 ‘심우도’ 그림은 마치 소를 찾는 과정이 만화 영화와 같다. 그림이 이야기 전개와 잇닿아 있어 그 뜻만이 아니라 보는 재미를 더해 준다. ‘심우도’에 나오는 소는 우리의 마음, 곧 마음 찾기를 소라는 짐승, 길들어지지 않고 코뚜레도 없는 막무가내의 소 찾기와 길들이기를 상징적으로 은유한 그림이다. 그러나 ‘심우도’에 나오는 소는 일반적인 소의 모습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듯하다. 보통 우리가 소를 이야기할 때 떠올리는 소의 덕목인 죽어서까지 철저하게 인간들에게 각부위별로 식용화되는 헌신성과, 살았을 때의 노동이나 순종 따위 말이다. 소 이야기 하나 더 하자. 옛날 어느 수행승이 시골길을 가다가 나무에 매어져 있는 소 곁을 지나게 되었더란다. 그 스님의 마음인 즉 한갖 미물인 소이지만 소의 신세가 여간 불쌍하지 않아, 한마디 해 주었다지. “발보리심하라”고. 묵묵히 새김질만 하던 눈 큰 소가 스님의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너는…” 하는 반문을 하자, 그 말이 천둥처럼 스님의 목덜미를 잡아 채었단다. 스님은 그 자리에서 확철대오를 하였단다. 가만히 생각하면 홍소를 터트리지 않을 수 없는 소의 대답에, 스님의 뜻밖의 자기 통찰 깨달음이 아닐 수 없겠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간간이 겪는 자신의 어리석음의 구석진 곳을 깨닫는 순간을 찾는 것과 견주어 보면 더욱 큰소리의 웃음이 나지 싶다. 심우도에도 나와 있듯이 고삐만 틀어쥐고 있으면 소를 길들일 수 있다는 어리석음은 또 하나의 틀에 갇혀버리고 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중섭은 소를 많이 그린 화가다. 그 소들은 일제치하에서 ‘억압된 민족적 분노를 표출하는 적절한 소재이기도 하고, 순하디 순하여 금방이라도 뜨거운 눈물을 철철 흘려 버릴 듯한 그 시대 민중들의 슬픈 소이기도 하였다. 정축년, 우리 소의 눈망울은 어떤 표정이어야 하나. 새해에는 저마다의 소를 찾아 나서 보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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