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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선사가 머문 동림사는 아마도 호계虎溪라는 개울가에 있었던 것 같다. 스님이 이 산으로 들어갈 무렵 수행을 마치기 전까지는 그 개울을 절대 건너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한 바도 있다. 그래서 아무리 반가운 손님이 찾아와도 배웅을 할 때 이 개울을 넘는 일이 없었다. 호계라는 계곡은 혜원慧遠 스님이 손님을 배웅할 때 이곳을 지나치면 호랑이가 울었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그러던 어느 날 혜원 화상에게 당시 근처에 있던 육수정(陸修靜 406~477;도교의 남천사도南天師道의 창시자)과 귀거래사의 주인공인 유명한 도연명陶淵明(陶潛 365~427) 두 사람이 찾아와 밤을 잊고 즐겁게 이야기 하니 그 반가움이 온 산을 채우고도 남음이 있었다. 아침이 되어 아쉬움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그들을 배웅하게 되었는데, 그 반가움과 아쉬움에 혜원선사는 이미 호계를 무심코 지나치게 되었다. 개울을 건너온 뒤 호랑이 울음 소리를 듣고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 세 사람이 파안破顔하고 크게 웃었으니 이것이 ‘호계삼소虎溪三笑’라고 하는 불교계의 유명한 사자성어가 출현하게 된 배경이다.
육수정은 도인道人이었고 도연명은 관리를 지낸 유가의 시인이다. 이런 인물들이 혜원스님과 동림사에서 만났으니 유불선儒佛仙의 대표선수가 모인 셈이다. 여산은 지금도 그렇지만 종교의 메카 쯤 되는 곳이고, 중국의 종교나 사상은 지금도 그렇지만 전통 사상을 중심으로 하여 묘하게 융합되어 있다. 허긴 종교 간의 화합이 별거이랴. 하지만 아직 종교 간의 색깔이 분명하지 않았던 혜원선사의 활동 시기에는 비록 세 사람이 처한 환경은 달랐지만 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는 같았기 때문에 그날의 회합이 그렇게 즐거웠으리라. 이 이야기의 주제로 다시 돌아가자. 삼교화합이 이 이야기의 주제가 아니라 자신의 굳은 결심도 여기에 앞서는 인간적이고 본질적인 즐거움에 무심코 그 선을 넘을 수 있다는 이야기로 말이다.
혜원선사의 탑비塔碑에는 ‘역경계逆境界(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는 깨기 쉬워도 순경계順境界는 깨기 어렵다.마음에 거슬리는 일은 참을 인(忍)자 하나면 잠시 후 지나갈 수 있지만 만약 내 마음에 맞는 일을 만나면 마치 자석이 쇠를 만난 듯 부지불식간 하나로 합쳐진다. 무정물無情物(나무나 돌과 같이 감각이 없고 성품이 없는 것)도 그러한데 하물며 온 몸이 티끌 경계에 빠져있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는 생전의 가르침이 전해지고 있다.
참을 인자가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이 있지만 아, 오히려 구도求道의 길에 처해서 참을 인자는 그래도 쉬운 것인가 보다. 보통은 각종 고난과 어려움이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인간의 됨됨이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럴 수 있지만 도道라고 하는 관점에서는 오히려 그건 수월한 축에 속한다는 말이다. 깨달음을 다짐한 사람에게 고난이나 어려움은 심신 단련의 좋은 매개체이지만 몸 편하고 마음 편하면 당연히 도에서 점점 멀어질 수 있다. 그러니 제 편한대로 생각하기 좋아하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항상 핑계도 많고 구실도 많다. 나 역시 그런 점에서는 별 수 없긴 하지만 굳이 뭉뚱그리자면 ‘사람’은 그렇게 참 나약한 존재이다. 그날 밤 그저 반갑고 아쉬운 마음에 부지불식간에 호계를 건너온 혜원선사가 아주 묵직하게 남겼음직한 그런 가르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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