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여름이면 홍수로 인해 거센 물결이 광분狂奔하여 산을 삼키고 언덕을 휘감아 종전의 계곡과 하천의 모습을 바꾸곤 했는데, 이곳 홍류동도 결코 예외가 아니었다. 작년 이맘때쯤 홍수로 가야산 계곡에 물이 넘쳐 농산정 곁 계곡 한가운데 팔분체八分體로 ‘홍류동紅流洞’ 세 글자가 새겨진 큰 바위가 떨어져 나가고 지금은 ‘류’자의 일부와 ‘동’자만 남게 되었다. 이 홍류동 석각石刻은 농산정에서 계곡 건너 도로 위쪽에 최고운의 시가 새겨진 제시석題詩石과 함께 이 계곡을 찾는 사람 가운데 글씨에 관심있는 이라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완상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자취를 온전히 볼 수 없게 되어 아쉬운 심정을 이루 형언할 수 없다. 다만 전에 찍어둔 사진을 내어 보기는 하나 어디 홍류동 물소리 들리는 실경實景 가운데서 보기만 하랴. 올 여름에도 홍류동에 들어갔다가 떨어지고 남은 석각의 일부를 보고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았다. 그런데 일간에 자동紫東 이정모李正模(1846~1875)의 시문집인 《자동집》 가운데 <가야잡영伽倻雜詠>의 ‘홍류동’이라는 재미있는 시를 보게 되었다. 세인지분태世人脂粉態 세상 사람 겉치레하는 속태 무물불천투無物不遷 무엇이든 변치 않음이 없네 번장홍일자將紅一字 문득 하나의 이 ‘홍’자마저 강욕완청류强欲浣淸流 굳이 맑은 물에 씻고자 하네 시인은 홍류동 맑은 물에서 세상의 가식을 씻고자 하여 ‘홍류동’이라는 이름 가운데 ‘붉다’는 뜻의 ‘홍’자마저 씻어내기를 바랐다. 어차피 그 이름도 마침내 버려야 할 색상色相이 아니던가. 이 시를 통하여 그동안 아쉬웠던 나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 자동의 이 시는 어쩌면 오늘의 나를 위해 준비한 말인가. 홍류동의 ‘홍’자가 없다한들 어찌 홍류동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찾는 데 더하고 덜할 것이 있으랴.□ 필자 주:이정모는 경남 의령의 자미산紫薇山 아래 도당곡陶唐谷에 살았으므로 호를 자동紫東이라 하였고, 조선 후기 성주 출신의 학자인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1818~1886)의 제자 가운데 주문팔현洲門八賢에 들 정도로 학행이 높았다. <가야잡영>은 모두 10수인데 《자동집》 권1에 실려 있고 ‘홍류동’ 시는 이 가운데 제9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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