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연방광(隨緣放光)-통일에 대한 나의 생각

올 여름 장마철은 여간 덥지가 않다. 예년 같으면 장마철이면 그저ꡐ후덥지근하다ꡑ고나 했지, 이렇게 찔 듯이 무덥지는 않았다. 올 여름이 불볕더위 이상으로 덥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연일 매스컴을 계속 강타했던 문익환, 서경원, 임수경 밀입국 사건과 중국의 북경사태 조짐 따위가 여름 장마의 가라앉은 분위기를 더욱 침통하고 우울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뉴스의 행방과 초점에 모든 관심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맨 먼저 신문의 새로운 수사 발표나 방향에 눈을 주었고, 저녁이면 으레 텔레비전 앞에 모여앉아 뉴스와 해설에 눈과 귀를 기울이곤 하는 모습으로 일관해 왔다. 세상만사를 제쳐 놓고서 말이다.
ꡐ죽의 장막ꡑ이니ꡐ철의 장막ꡑ이니 하여 한때 우리의 눈에 사뭇 신비하게까지 비친 중국, 그리고 최근에는 우리와 새로운 무역교역국으로서 관심을 모은 중국, 그 중국 대륙에서 거대한 용암이 분출되듯 민주화의 거센 목소리가 천안문 광장을 가득 메우는 모습을 보며 철저한 통제사회 속에서도 민주화의 요구는 필연적이구나 하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군화와 총검으로 무장한 군대는 무지막지한 탱크를 앞세우고 중국 역사에서 유례 없는 무자비한 살육과 탄압을 전개하였다.
세계의 빗발치는 힐난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중국 대륙의 민주화 탄압은 그 광포함을 늦추지 않았으니, 천안문 광장은 시체로 뒤덮이고 또 공개처형이라는 중세 암흑시대의 흉흉한 분위기마저 연출되었다. 그 야만성과 잔인함에 온 세계가 경악하였지만, 중국은 오히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내정간섭을 맡아달라는 중국 특유의 여유있는 몸짓을 태연하게 보여줄 뿐이고 보니, 지금도 중국땅 안에서는 그 엄청난 사건의 말미가 계속될 터인데도, 그에 대한 세계의 눈은 흐지부지되어 고작 신문의 한 귀퉁이나 장식하고 있을 뿐이다.
한편 이러한 사태를 보는 우리의 시각은 어떠한가.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로 얽힌 국제사회라고는 하지만, 인권과 인간 생명이 처참하게 유린된 그 사태에 대하여 정부 차원에서의 논평 한 마디도 없었다. 그런 처지인지라, 많은 사람들에 내심 중국은 과연 대국이구나 싶었고, 또 우리와 중국과의 무역과 경제 교류에 큰 변화를 초래할 것을 우려하여 제대로 논평조차 하기를 꺼리는 우리 정부의 허약함을 이해하고 지나갈 뿐이었으니, 우리의 민주의식은 장마철 안개처럼 사라져 버린 듯하다 비록 한쪽에서는 중국의 민주화를 강력히 지지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역사란 정치와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지라, 이번 중국의 민주화 요구에 대한 정치적 함수관계에 대하여 그 동기와 결과를 보는 비판과 평가의 시각이 분분한 것도 사실이다. 우선 대만이나 미국의 견해를 주축으로 하는 반공적 자유민주주의 우월의식의 시각을 들 수 있다. 말하자면, 경제적 번영도 정치적 자유도 마련해 주지 못한 모택동의 마르크스주의는 결국 빈곤의 평등분배와 사회의 퇴보만 가져왔을 뿐이기에 진작부터 이러한 민주화의 요구와 시위 조짐이 팽배하여 있었던 터이며, 현 집권층의 이율배반적인 부조리가 더욱 노골적으로 고질화되자 그동안 쌓인 욕구와 불만이 민주화 요구와 함께 표출된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곧, 지난 사십여 년 동안의 모택동적 통치방식에 종지부를 찍은 사건이라고 그들은 단정 짓고 있다. 이와 같은 시각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의 역사가 공산주의 이념에만 급급한 나머지 빈곤과 경제적인 낙후만을 가져옴으로써 국민적 지지기반을 상실하기에 이르렀다는 해석을 바탕으로 한다.
또 하나의 다른 시각은 모택동의 노선이 중화대국주의(中華大國主義)를 위한 수정주의 노선을 표방했던 탓으로 현재와 같은 지경을 맞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보는 견해이니, 곧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들의 견해가 이것이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중국의 문제는 중국인 그들의 문제이므로 그들의 처지에서 사태를 이해하여야 한다는,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이 다음과 같은 견해를 펴고 있다. 이미 1986년 말에, 중국의 반체제 인사인 방여지 교수가 부학장으로 있다가 중국 정부로부터 그 지위를 박탈당한 바 있는 ꡐ과학기술대학ꡑ의 대학생들이 인민대표대회의 대학지구 후보자 선출 과정이 비민주적이어서 민주집중제의 시행과정에서 정치적 참여의 길이 막혀 있다는 불만 표출과 아울러, 대학생들의 학교생활에서의 더 많은 자유 및 정부의 경제적 지원의 대폭 인상 둥을 요구하며 나선 바 있다.
그 후에도 대학 밖의 상황이 더 악화되어 부패가 만연하고, 물가 상승의 폭이 커지고, 당과 정부의 특권이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일반 학생들의 불만이 고조되던 중, 올해 4월 22일, 그들에게 상당히 호의적이며 동정적이었던 호유방의 장례식날을 기한 추모시위를 기점으로하여 연일 대규모 집회를 열게 되었다. 이러한 시위의 발단은 다만 현 집권층의 성실치 못한 정치 때문에 일어난 것이지, 결코 사회주의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모택동의 대중적 노선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절박한 외침으로 본다는 것이 그 주장의 요지이다.
그 밖에도 북한처럼 북경에서의 군부 진압이 설사 무자비한 살육으로 얼룩졌긴 하나 오히려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지지성명을 내는, 사회주의 고수 세력의 무비판적인 주장이 있기도 하지만, 최근의 중국사태를 보는 시각은 대체로 앞의 세 가지쯤으로 대별된다.
이러한 견해들의 도식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한창 뉴스거리가 되고 있는, 통일을 빌미로 하여 전개되는 대학가나 정치권들의 이념적 갈등 속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을 살펴보면, 대학가의 계속되는 시위에서 쏟아져 나오는 요구들은 다 주워섬기기도 어려울 정도로 혼란스럽다. 특히나 요즈음 대학가 정문이나 본관 건물 벽에 걸려 있는 붉은-빛깔의 대형 현수막에 적혀 있는ꡐ평양축전 참가ꡑ 등의 구호는, 그 크기 탓만은 아닐진대, 온 대학가를 위압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어 묘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실제로 대학가 주변을 지나다니자면 요란한 북소리, 징소리에 혼을 빼앗길 정도인데 그 소리와 함께 한껏 격앙되어 있는 각종 구호들로 해서 이 거리가 과연 서울인지 아니면 평양의 어느 거리인지 착각을 일으킬 지경이다.
또 문익환, 서경원, 임수경으로 이어지는 밀입북 사건들이 통일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근심과 우려로 몰고 가는가 하면 급진 세력권에게는 ꡐ통일에의 봇물이 트이는 소식ꡑ으로서 대단히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여지는 가운데, 공권력은 이를 기화로 좌경일소라는 강경 방침으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현 상황에 대해 사회주의에 대한 동경과 사장으로 무장된 사람들은 사회주의 우월적 관념 속에서 사태를 판단하려 한다. 이를테면, 현 자본주의 체제는 현재의 모순과 비리들에 대해 더 이상 적당한 처방을 내릴 수 없을 정도로 극한 상황에 이르렀으므로 도리없이 사회주의로 돌아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으리라 보이는데, 실제로 남한의 주사파(主思派)들은 혁명의 사령부를 평양으로 설정하는 등으로 대한민국은 나라가 아닌 일개 식민지로 여기고 있음도 본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은, 그들의 이론 및 논리 전개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참으로 엉뚱하고 온당하지 못함을 지적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또 한편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은 남북 대치 상황의 정치현실에서는 군부와 정치권이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으므로 제한적, 수정적 자유민주주의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꽤 그럴싸한 논리를 펴기도 한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진정한 민주주의-서구식 민주주의와는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편의상 그렇게 부른다-가 뿌리를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권력층이나 부유층들이 제 구실을 못한 채 많은 부조리를 드러내고 있기에 상대적으로 민중들의 거센 민주화요구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가장 일리있는 주장을 펴고 있기도 하다. 앞서의 중국 사태를 보는 시각이나 우리나라의 현 상황을 진단하는 시각이나 이 세번째의, 가장 설득력 있어 보이는 견해들에 따르자면, 중국의 현실은 본디 중국식 사회주의로 돌아가야 하고 한국은 한국식 민주주의를 올바로 정착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렇다면, 곧, 한국식 민주주의의 올바른 정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지금까지 많은
모순된 논리와 부도덕한 행동을 일삼음으로써 가진자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유기해 온 권력층 및 부유층들의 의식 개혁이 선행되어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겠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대한민국이 그렇게 한국식 민주주의를 고수해야 한다는 이 논리는 어찌보면 북한에 대해서는 북한식 사회주의- 물론 부패나 왜곡이 없는 올바른 사회주의일 터이다-체제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성립시킨다. 이러한 논리는 자칫 서로 다른 두개의 이념을 인정함으로써 한반도는 영원한 분단국가로서 머물러야 한다는 사고로 잘못 받아들여지거나 비약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서로가 상대방의 처지에 대하여 존중하는 자세로써 화합의 첫걸음을 시작하자는 것이 본뜻일 따름이다. 통일은 우리 민족 공동의 염원이며 필연적인 귀결일진대, 이제까지처럼 막무가내의 적대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서로가 서로의 의견을 차츰차츰 절충해가며 화합의 길로, 합일의 길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우리 모두, 부처님의 한 우화에서와 같이, 머리와 꼬리가 서로 자기 뜻만을 고집하다가 결국 불에 타 죽은 어리석은 뱀과 같은 꼴이 되지 않도록 하자. 좀더 진솔하고 지혜로운 생각을 길러, 서로 조금씩 자기 주장을 양보해나갈 때에만은 통일이 비로소 가능해짐을 알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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