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봄바람

봄바람에 대해
이야기 좀 해보라고
평범한 아낙네에게
봄바람의 위대함을 논하라고
하시니 글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는 저로서는
무척 부담이 되는군요.
스님! 그냥, 열심히 부엌살림 하며
관세음 보살님만 부르던
제가 봄바람은 어떤 모양인지,
어떤 냄새를 품고 있는지,
어떤 노래를 부르며 부는지
갑자기 기억해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무가 흔들리는 거냐,
바람이 흔들리는 거냐?
주제넘은 선문답형의 글은
자신 없고 그냥 제가 겪었던
지난 봄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무념 속에 이번은
수행을 잘해 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바람에 대해서 아이를 가르치며
공부를 한 적이 있지요.
바람, 쉽게 풀어 이야기하자면
공기의 움직임,
공기가 열에 의해
에너지를 형성하여
이리저리 움직이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왔다가 스쳐가는
그 바람이 사람 잠 못 자게 하고,
코끝에 사랑타령하게 만들며,
파도도 타게 만들고,
폭풍에 여러 장면 연출도 하며,
토네이도 되어 사람 공 들여놓은
집도 들었다 놨다,
<오즈의 마법의 나라>
구경도 시켜주고,
땅 파고 숨죽여 있게도 하며,
자연에 거만 떨던 몸 잠시나마
참회하게 만들다가 번뇌고 뭐고
일심으로 깨우치지 않으면
얼어 죽게 만들겠다고
칼날 휘두르는
동장군의 콧바람으로도
변신한다는군요.
오늘 외출하고 돌아와 생각해보니
추워서 직선코스로 걷던
내 발자국 폭이
달라진 것 같긴 합니다.
가을바람은 봄바람 여름바람
지나온 이야기를
책 한장 한장으로 잘 읽어주던데
봄바람은 가을바람 겨울바람
언제 본 인연인가
뚝딱 잘도 잊어버립니다.
오늘 저는 봄바람에 이어질
아직 오지 않은 인연,
기대하는 희망사항 나열보다
지난 늦은 봄 마조 스님
동그라미 안팎에서 얻어맞은
이야기 좀 풀어놓을까 합니다.
지난 봄 왔다가 사라진 그 바람은
기억에 희미하지만
내 마음의 씨앗을
싹틔우고 갔습니다.
봄에 싹이 돋아 한여름 밤 축제를
열어 일생에 가장 운 나쁠 거라던
2005년을 오히려
가장 아름다운 비밀의 정원으로
가꾸어 놓았습니다.
2004년 겨울이던가.
사주 좀 본다는 친구의
󰡒내년은 죽었다하고 살라󰡓 는
엄포에 기가 죽었는데,
설악산 꼭대기에서 만난 기인도
󰡒내년에 칼 맞는다󰡓는
무시무시한 예언을 해주고,
생년월일이 같은 친구는
우리 내년만 잘 버티자고 하더니
미국으로 건너가 버렸었지요.
물 건너가면 운이 바뀐다나요.
심란한 회오리바람 뱅뱅 휘돌아 치니
어질어질한 게 중심 잡고 서 있던
두 다리가 뒤꿈치가 들썩,
앞꿈치가 들썩거리며
위태위태했습니다.
가만 보니 그 회오리 그 자리만
돌더라고요.
한 발짝 옮긴 차에 뒤도 안 보고
내달음 친 곳이 해인사였지요.
그 멀다던, 한국 땅
어디 있는 줄로만 알고 있던 그곳에
순간 이동한 듯 들어섰습니다.
몇 달씩 걸려 다니시던 스님들
생각하며 들어섰는데
어깨에 들러붙어 있던
잡귀가 도망갔는지,
선녀 옷자락 두른 듯이
온 몸이 가벼워
붕붕 떠다니는 듯 했습니다.
절도 안 해보았는데
부처님 앞에서
모든 죄 다 씻어달라며
앙탈부리는 듯 넙죽넙죽
넉살 좋게 엎드렸습니다.
그만 무아지경으로
빠질 즈음 뒤에서
쿡쿡 찌르는 분이 계셨습니다.
뒤돌아보니 정신 나간 모습이
가관이었는지
󰡒정신 차리라,
무릎 관절 다 나간다󰡓며
어느 스님이 주의를 주셨습니다.
초발심시 변정각이라시더니…
내가 발심을 하긴 했었나 봅니다.
나보고 관세음보살 같다 하시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재탄생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새벽 봄바람은
말로 표현 안 할랍니다.
그 스님께서
얘기 좀 해보라고 하시더니
󰡒유체이탈 같은 건 몰라 ?󰡓 라는
질문에 좀 멍해지긴 했지만
󰡒스님,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조만간 기별 없이
들르겠습니다.󰡓
해인사에서 맞은 이틀째 바람은
저를 바짝 들어
마침내 지족암으로 올려 보냈지요.
신선이 학을 보내 친구를 초대하여
마주 앉아 차 한 잔 나누다
가야산 호랑이 울음소리에
미소를 나누었을 그곳은
참으로 다정한 모습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느 소설가님께서
글을 쓰고 계시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접한 적이 있습니다.
아직도 그 소설가가 거기 있다면
제가 보았던 그 바람을
올해 그도 보게 될까요?
그리곤 바람도 지쳤는지 안고는
못 가겠다고 등만 밀어주겠다며
올려 보낸 곳이 백련암이었습니다.
원택 스님 재미있는 글 솜씨에
방바닥에 드러눕게 만들던 그곳,
성철 스님 큰소리 쾅쾅 치시던
그곳에 도착한 후
그만 쭈그리고 잠이 들었습니다.
법당 뒤 시멘트 바닥인데도
어느 온돌보다 편안한 그곳에서
산에서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온
비단 바람을 덥고
고단한 몸을 놓았습니다.
얼마쯤 지났는지
󰡒거기서 뭐 해요?󰡓 하며
벼락치는 소리에
눈 부비며 깨어났습니다.
올려다본 스님의 눈은
옆선을 그리며 화살을 내리꽂는데
절 예법이라고는 조금도 모르는
초자배기가 죄송한 마음에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사실 뭐가 잘못된지도 모르고
혼이 나니 죄송한 걸로
알았지만 말이죠.
그 후 그곳에서 어찌나
많은 실수를 저질렀는지.
새는 바가지라시는 모욕적인
꾸중에도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지금은 풀이 많이 죽었습니다.
󰡒원주스님! 새던 바가지,
스님 꾸중에 뻥 뚫려
새롭게 바가지 마련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죄송했다는
사죄의 글도 올릴까봐요.

1. 차 드실 때 불쑥 들어가
차 달라고 졸라서 죄송합니다.
2. 주무시는 줄 모르고 악몽 꾸고는
엉엉 울어 수면 방해해 죄송합니다.
3. 공부하시는데 다 들리는 줄 모르고
큰소리로 전화하고 웃어서 죄송합니다.
4. 수행 정진하시는 공간에서
선글라스 쓰고 다니며 풍기 문란하게
만들었던 것도 죄송합니다.
5. 기타 등등 죄송합니다.
아이고! 염라대왕님, 다 아시게 됐으니
이 일을 어찌할 건지…….

여러 스님들께서 수행 정진하시는
모습 보고 너무 행복했었습니다.
이 글을 쓰며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건조한 회오리에 힘 부치던
내 마음의 싹이
해인사의 촉촉한 생명수 담고
불던 봄바람을 맞아
싹틔우게 되더니
어린 나무로 모습은 갖추었습니다.
겨우내 두툼한 짚으로
잘 둘러놓았었습니다.
다음 짚을 두를 때까지
열심히 이 바람, 저 바람,
그 바람, 새 바람 맞으며
나이테를 넓히겠습니다.
거목이 되어 체로금풍
(가을바람에 잎이 다 떨어져
나무의 본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맑은 가을바람이
충만한 것을 표현하는 말)을
노래할 때가 올 그날까지
잘 보호하겠습니다.
그때가 되면 바람이 흔들렸는지
나무가 흔들렸는지 아니
제 마음이 흔들렸는지
해답을 낼 수 있겠지요.

마지막으로 C선원 S큰스님께서
해주신 말씀 여기 옮기면서
끝맺을까 합니다.
󰡒불교는 행자가 큰스님 되고,
보살에게 내가 합장하고
큰절하는 날이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모르는데
거기에 묘미가 있고 매력이 있어󰡓
하셨지요.
이 글을 함께 읽어주신 여러분,
이번 봄바람 쐴줄
마음의 씨앗 어디쯤에
뿌렸었는지 기억하시죠?
회오리 속에서 어질어질하시다면
한 발자국만 옮겨보세요.
행운의 보석이 콕콕 박혀 있는
해인사 봄바람 쐬러 모두 모이시죠.
해인사 봄바람 대단합니다.
이번 봄바람에 새싹 틔워
내년 거목으로 당당히
설지 누가 압니까?
게다가 내년 봄에
방장 큰스님께서 신발도
미처 못 신으시고
환영인사 나오실지 말입니다.
󰡒방장 큰스님!
이번 봄 꼭 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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