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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 물음에 괴연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백 근쯤 되는 몸뚱아리인가 아니면 그 몸뚱아리를 움직이는 마음인가. 여기서 분명한 것은, 나의 주인은 마음이고, 그 몸뚱아리는 마음(主人)이 움직이는 손님(客)이라는 것이다. 잘 먹고 싶고, 잘 입고 싶고, 잘 자고 싶은 것은 나의 객인 그 몸뚱아리가 원하는 것들이다. 우리네 주인은 대부분이 몸뚱아리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듯하다. 좋은 것을 먹고 싶고, 좋은 옷을 입고 싶고. 좋은 집에서 잠자고 싶은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두고 우리는 잘 산다고 말한다. 이러한 것들은 다 몸뚱아리가 바라고 좋아하는 것들이다. 몸뚱아리(客)가 마음(主人)을 움직이는 것이다 말하자면 손님이 주인을 시키는 꼴이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분명히 마음이 주인이고 몸뚱아리는 손님인데 말이다. 삼서근같은 마음을 가지며 살고 싶다. 그 삼 서근은 부처님과 같다. 펄펄 끓는 물에서 더욱 질겨지고 더 단단해지며, 사람의옷을 만들어 줌은 물론 무더운 여름날 열심히 일하는 농부들은 시원하게 해 주는 그런 삼서근 말이다. 밖에서 아무리 어렵고 좋지 않은 여건이 닥치더라도 더욱 단단해지고 질겨지며, 늘 다른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이 삼서근과 같은 마음이 아닐까? 이제부터는 나의 객인 몸뚱아리보다는 나의 주인인 마음을 가다듬는 데 힘써야겠다. 적어도 우리들 주인인 마음과 손님인 몸뚱아리를 나누어서 생각할 줄 아는 것만 해도 대단히 중요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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