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되는 이 가을에

(I)
어수선하게 시작되긴 했지만 변함없이 섬돌 아래에서 귀뚜리는 울고 대추열매 붉게 익는, 다시 가을이다.
비록 수해(水害)로 얼룩진 가을의 관문을 통과해 왔지만 서늘한 바람과 함께 시작된 남북 총리회담과 북경 아시안게임 등으로, 또한 분주한 세사(世事)로 우리들의 귀와 눈을 풍성하게 할 모양이다.
교차되는 희망과 실망의 단어들은 푸른 하늘에 내팽개치고 화려한 깃발이나 나부끼면서 이 가을은 또 그렇게 몇 개의 수식어로 저물고 말 것인가?
아직도 몸을 가릴 집이 없어서 남의 학교 창 너머로 점점 둥그러지는 추석달을 바라보는 수재민의 서글픈 마음은 모르는 채 접어두고 우리는 북경의 메달수에만 또 귀를 열어 놓을 것인가?
밤 늦게까지 중계방송에 매달려 시(詩) 한 줄 읽지 않는 무지(無知)한 가을이 될까 두렵다.
(Ⅱ)
가을에 들면서 불교계에도 행사는 많다. 연례행사인 단일 수계산림이 범어사에서 엄숙하게 거행되었고’ 한강연등제와 세계 고승 판차실라 수계법회와 범종교 음악제 등 우선 그 행사의 내용은 접어두고라도 이름만으로도 화려하고 규모가 큰 행사들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열릴 모양이다.
그밖에 각 사암마다 방생법회다 무슨무슨 불사(佛事)다 하여 한결같이 바쁜 일정으로 가을의 사원은 마치 잔치집처럼 분주할 것이다.
이제 무엇이든 하지 않고 잠잠하면 주지스님의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거나 게으르다고 인정되는 터라 무슨 일이든지 벌여놓고 보아야 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한국의 사원들은 실로 돌아가는 팽이처럼 어지럽거나 무엇인가 해야한다는 일말의 불안과 강박관념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디로 가야 고즈넉한 고요와 만날 수 있을까?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억새풀만 흥들리는 조용한 산사는 그 어디에 있을까? 이미 산이란 산은 등산객과 행락객에게 다 빼앗기고 천하의 절들은 불사에 바쁘니 어디에서 고요한 한 점의 고요를 얻을 것인가.
더 추워지기 전에 거두어들일 일로 바쁜 농부들이나, 이미 돌아가야 할 청산을 잃어버린 수행승들은 시정(市井)을 떠돌다가 더욱 깊은 숲으로 첩거하기 위해 발길을 재촉하는 10월.
조락하는 만물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자신의 발등을 응시하면서 걸어보던 산길이 문득 그리워지는 가을날.
선우도량(善友道場)이 열리고 다만 몇이라도 모여서 청정수행 가풍을 이어가겠다는 결의로 도반스님들이 결사에 들어간다 하니 다만 고맙고 반가울 따름이다.
(Ⅲ)
현대사회는 미증유의 경험을 요구하고 다양성을 요구한다. 오늘밤에 와서 수선묵언(修禪默言)만이 수행의 전부라고 말할 순 없다. 시중(市中)에서 포교와 교화를 맡은 보살행이야 말로 더욱 요구되어지는 시대적 상황이다. 그러나 여전히 수행의 뿌리는 안행(雁行)과 묵언, 그리고 선원의 시퍼런 청규와 죽비소리이다.
오늘의 불교사원은 더 큰 불사를 일으키고 더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들이는 일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근원적인 가르침을 회복하고 본래적인 수행가풍을 진작하여 사원이 가진 본래의 의미로 복귀(復歸)하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우도량의 결사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문제는 흔히 깨달음이 개인의 체험에만 천착하여 개인의 실존성을 강조한 나머지 이 역사와 오늘의 중생 편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한낱 소승의 작은 배 밖에는 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제 홍엽(紅葉)이 가야산을 비롯하여 천하의 산을 물들이고 있다. 그 속에서 오늘도 역사의 질곡과 모순으로 인하여 고통받는 중생들과, 낙엽처럼 무너지고 있는 참다운 삶의 가치 앞에서 파아랗게 열려 있는 가을 하늘처럼 맑게 개인 불타의 혜명을 올려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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