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불교인이라면 오늘의 불교 현실을 걱정하지 않는 이가 없을 만큼 불교의 위기 의식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며 현재 불교를 둘러싸고 있는 안팎의 조건도 매우 어렵다. 외적인 문제는 접어두고 내적인 문제만 살펴보더라도 포교의 문제에서 시작하여 종권과 주지직의 쟁탈전, 승가 교육문제, 재산 분규 문제, 경전의 현대화문제, 사찰의 민주적 관리 운명 문제, 제도 개혁 문제에 이르기까지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혹자는 이러한 상황을 보고 한국 불교는 더 이상 이 민족과 사회 역사에 정신 문화의 지주적 역할을 할 힘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과연 불교는 더 이상 가능성이 없는 것인가?
지금 불교계의 사회 역사 의식이 있는 불교 대중들은 불교의 전반적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불교의 개혁과 혁신은 부파불교 시대의 대중과의 괴리와 관념성으로 치다르는 현학적인 모습을 극복하고자 일어난 대승불교 운동에서부터 최근의 한국불교 정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각 역사의 고비마다 제기되고 수행되어 왔다. 2,500여 년의 불교의 역사와 1,600여 년의 한국 불교 역사에서 불교 개혁과 혁신의 노력이 계속되어 왔지만, 아직도 개혁의 목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는 것은 그때마다 승가 각자 자신들이 자기 위치에서 개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교단 상층부에만 요구하고 그 책임을 떠넘겼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행히도 불교의 현실적인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불교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개인과 단체가 늘어 가고 있다. 안팎의 제반 악조건 속에서도 조계종 제도개혁위원회 뿐만 아니라 승가의 체질 개선과 승풍진작을 위한 승가 결사체나 현대적인 포교 방법과 사회와 민족 문제에 대한 대응과 불교 개혁을 주장하는 출가, 재가 단체가 상존하는 것이다. 이들 단체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시급하게 요망하는 것이 불교 개혁임을 알 수 있다.
불교 개혁이라는 큰 목표에는 대부분 의견을 함께하지만 어떤 부분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라는 원인 진단과 방법에는 많은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제출되는 개혁안을 보면 불교 사상에 대한 입장에서부터 구체적인 신앙 실천까지 포괄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 사찰 재정 공개라는 항목은 대부분 제기하고 있다.
불교 개혁안 가운데에서 대부분 사찰재정 공개라는 항목이 제기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종단의 권력 다툼이나 주지직을 놓고 싸우는 모습, 삼보정재를 놓고 일으키는 재산 분규 때문이다. 이러한 작태들은 모두가 돈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실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은 만능에 가깝다. 인류의 역사상 많은 전쟁들이 물질의 가치와 인간의 노동 가치가 함축되어 있는 돈 쟁탈전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간의 삶의 목표가 청정 국토에서 평화롭고 풍요하게 사는 것이라 할 때 평화와 풍요를 파괴하는 역사가 진행되어 왔다고 하겠다. 우리 승가는 이러한 중생의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할 책무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오늘의 승가가 그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찰 재정 공개는 불교 개혁의 관건인 것이다.
소속 사찰을 지도 관리하여 불국토를 건설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종단이 이권 다툼의 온상이 되었으며, 대중의 수행을 돕고, 교화 활동, 재산 관리와 사회적 역활에 지도자가 되어야 할 주지직이 투쟁의 대상이 되었고, 인재 양성, 포교 활동, 복지사회를 실현하는 데 쓰여져야 할 삼보정재가 다툼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볼 때 사찰의 민주적 재정공개 운영은 개혁의 관건이다.
잡아함경에 “비구들이여, 너희들은 나무가 필요할 때에만 나무를 구하고, 풀이나 수레나 일꾼이 필요할 때에만 그것들을 구할지니라. 부디 스스로 치장의 금, 은 따위의 보물들은 받지 말아야 하느니라”는 가르침이 있다. 이 말씀은 수행과 교화에 필요한 재화 이외는 구하여 갖지도 말며 받지도 말라는 가르침이다. 부처님 당시에 세 벌의 옷과 한 벌의 바루와 좌구座具와 물 거르는 주머니 등으로 수행자들이 청정하고 검소한 생활을 유지했다고 하는데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시대와 상황이 달려졌다고 하지만 그 정신은 살아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경전을 살펴보고 율장을 살펴봐도 승가 공동체의 운영 원칙은 민주적 공개 운명과 검소한 생활이다. 그런데도 오늘의 승가를 볼 때 올바른 교육과 함께 청정한 생활과 사회적 역할을 보장하기 위해 사찰 재정 공개라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상으로 공개 운영의 당위성올 말하였다.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원칙의 내용이다. 지금부터 공개 운영의 경험을 몇 가지 소개하겠다. 공개 운영의 결과 첫째, 대중이 사찰에 대한 주인 의식을 갖게 되고 사찰 일을 자기 일로 애정을 갖는다는 것이다. 둘째, 출가 재가간에 신뢰성이 생겨 존경을 받고, 셋째, 삼보 정재가 많은 사람들의 요구에 맞게 올바로 회향하고, 넷째, 사찰의 지역 사회역할이 확대되어 지역의 정신적, 문화적 지주로 자리매김하며, 다섯째, 지역민들의 사찰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는 등의 효과가 있었다. 사찰재정 공개라는 제도는 불교사상과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면서 필요한 하나의 방법적인 장치이다. 불교 개혁안 가운데에서 재정 공개를 말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이를 실현하려고 하는 노력이나 현실 상황을 보면 대단히 회의적이다. 그만큼 재정 공개는 민감한 사안이고 어렵다는 것이다. 출가 대중이 많은 본사급 사찰이나 그렇지 않은 말사나 포교당 형태의 사찰의 재정 공개 운영 원리는 같겠지만 형태는 차이가 많으리라고 생각하며 재정 공개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원칙을 말하고자 한다.
사찰 재정을 공개하려면, 첫째,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 곧 주지스님이 지도력이 있어야 한다. 소속 대중의 사상적 지도를 비롯하여 대중 생활의 귀감이 되고, 수행과 신앙 생활을 지도할 수 있어야 자신있게 재정을 공개할 수 있다. 단지 공개를 위한 공개가 되지 않고, 공개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의견을 조정, 재정을 올바른 곳에 회향할 수 있는 지도력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많은 스님들이 우려하는대로 공개 과정에서의 분란과 신도들의 잘못된 행위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찰 재정을 공개하려면, 둘째, 대중들 사이에 신뢰감이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재정을 공개하는 편이나 그렇지 않은 대중들 사이에 신뢰가 형성되어 있지 않을 때는 재정 집행에 대한 의혹을 일으키기 쉽고, 그러할 경우에는 완전한 재정 공개를 기피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재정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전체의 입장에서 대중의 의견에 따라 일을 처리하며, 대중들은 집행부를 믿고 더욱 더 재정을 잘 운용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을 실천하면 신의가 가득한 공동체가 될 것이다.
사찰 재정을 공개하려면, 셋째, 구성원들 사이에 주인 의식이 확고해야 한다. 신도들은 우리 스님과 우리 절이라는 의식이, 스님들은 우리 신도라는 공동체 의식에 바탕한 주인 의식이 있어야 한다. 주인 의식이 확고할 때 돈을 아껴 쓸 수 있고, 좀더 큰 일을 하기 위한 재정 확보에 구성원 모두가 힘을 합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찰 재정을 공개하려면, 넷째, 민주적인 절차가 보장되어야 한다. 숭가에서는 전래로 작법이라고 하는 민주적인 합의의 원칙에 충실했다. 어떤 일을 계획하고 집행함에서 충분한 의사 수렴과정이 있어야 구성원들의 힘을 모두 동원할 수 있고, 일의 통일적인 집행이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정 공개는 사찰의 모든 일을 민주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의 한 부분으로서 정착될 때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이상으로 사찰재정을 공개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을 네 가지로 이야기 했는데, 재정의 공개 운영이 많은 사찰에서 실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재정의 공개 운영이 이루어지면 불교의 파행적인 모습 가운데 많은 부분을 극복할 수 있고, 수입이나 지출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과 전망이 가능해서 과학적으로 불사를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찰 재정의 공개 운영은 무소유 정신으로 경제적인 평등을 추구한 승가 공동체의 실현으로 사회의 귀감이 될 수 있는 운영 방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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