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불일 보조(佛日普照)국사 지눌(知訥)스님은 오늘날 원효스님과 더불어 한국불교사에서 가장 활발하게 논의되는 고승의 한 사람이다. 스님은 고려사회가 한창 어지러웠던 의종 18년 서기 1158년에 황해도 서홍군에서 국학의 학정(學正) 벼슬에 있던 정광우의 아들로 태어났다. 스님은 어려서부터 병약해 여러 가지 약을 써도 아무 효험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부친은 불전에 나아가 “만일 저의 아들의 병이 나으면 부처님께 출가시키겠습니다 ”하고 발원하자 스님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다. 그러나 총명한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아들의 출가를 미루자 다시 병이 도져서 백약이 무효였으므로 할 수 없이 스님의 나이 8살이 되던 해에 종휘선시에게 출가시켰다. 그 후 스님은 25세 되던 명종 12년 서기 1182년에 담선(談輝)법회에서 승과에 합격하였으나 스님은 입신 출세의 길을 버리고 남행하여 깨침을 향한 정진에 몰두했다. 스님은 전남 창평사에서 「육조단경」을 일다가 홀연히 깨달은 바 있었으며 28세 때에는 하가산 보문사에서 이통 현장자의 화엄론을 원고 선과 교가 둘이 아님을 깊이 통찰했으며 명종 20년인 33세 때에는 담선법회에서 승과에 합격했을 때 만났던 10여 명의 스님들과 더불어 팔공산 거조암에서 ‘정혜결사’를 짓고 결사를 실천하였다. 그 뒤 41세 되던 해에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참선을 하던 중 대혜(大慧)어록을 읽다가 크게 깨달은 바 있었다. 그 이후 스님은 신종 3년 서기 1200년에 전남 지금의 송광사인 길상사 수선사를 열고 수행과 교화에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스님의 세수 53세이던 1210(회종 6년)년에 그 어머니의 천도를 위한 법회에서 대중에게 열반을 예언했다. 열반 하루 전에 목욕을 하고 대중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한 후 마지막 설법을 마치자 그대로 고요히 열반에 들었다. 스님께서 남기신 저술로는 「수심결(修心訣)」을 비롯하여 「권수정혜결사문(動修定彗結社文), 계초심학언문(讀初、學人文), 진심직설(直心直說), 법집별행록절요(法鄭鍵樓), 원돈성불론(圓願成觸), 간화결의론(看話決疑), 화엄론절요(華廳縮續) 등이 있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