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길목에 서니, 봄바람을 쐬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를 언제 어떻게 갈 것인가는 생각도 안하고 봄이 가장 먼저 닿을 만한 곳을 생각해봤다. 겨우내 얼어 있던 대지에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가장 먼저 불어오는 곳, 따뜻한 남도 끝 완도로 목적지를 정하니 그 뒤로는 아무런 걱정이 없다. 서울을 출발해 완도까지 닿는 데 걸리는 시간이 만만치 않을 듯 싶지만 봄을 찾아 떠나는 여행인데 그깟 거리는 중요치 않을 듯 싶다.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광주로 이동한 후, 광주에서 고속버스로 완도에 닿는 방법을 생각해내고 이른 아침 서둘러 집을 나섰다.KTX 타고 발견한 봄향기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어딘지 범상하지 않게 보였던 것은 기차여행이었기 때문일까? 창 밖의 풍경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조금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출장길마다 수도 없이 KTX를 타봤지만, 대지 위로 내리쬐는 햇살이 오늘처럼 온화하고 따스하게 느껴진 적이 없다. 완연한 봄의 화사함과 푸르른 날의 여름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이른 봄날은 이미 시작되고 있는 듯 했다. 겨울이 남겨놓은 흔적들로 앙상한 대지 위에 초록빛이 성큼성큼 자라고 있었다. 이른 봄을 향해 내달리는 듯이 유난히 청명한 하늘과 뭉게구름, 그 하늘과 구름을 모두 담고 있는 얕은 시내, 봄이 막 시작되는 열차 밖 풍경은 아름다웠다. 이르지도 않고 더 늦지도 않은 지금, 봄에 대한 희망과 설렘을 품고 겨울을 보냈을 대지의 숨결을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봄에 대한 기대감을 안겨준 짧았던 기차여행은 광주에서 완도행 고속버스로 갈아타고 2시간 30여분을 더 달린 후에야 완도에 도착한다는 번거로움쯤은 쉽게 잊을 수 있게 해줬다. 드디어 완도 도착, 본격적으로 봄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완도에서 찾은 봄소식 봄이 되면 가장 먼저 꽃소식을 전해주는 남도. 남도에서 이른 봄을 만났다.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는 갖가지 빛깔의 봄꽃들이 천천히 애를 태우며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고 시선이 머무는 어느 곳에나 봄바람이 일렁이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기다려 왔던 남도의 봄인가! 봄이 오는 곳에 언제나 가장 먼저 피는 동백 또한 이미 수줍게 꽃망울을 터트린 지 오래다. 그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동백꽃은 많은 그리움을 남긴 채 톡톡 꽃송이째 떨어질 준비만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완도에서 배를 타고 40여분, 영화 서편제 촬영지로 유명한 청산도 당리 고갯길에 섰다. 바람이 불 때마다 청보리들이 흔들리고 그 푸르름이 들판을 적시는 곳. 영화서편제에서 주인공이 진도 아리랑을 부르며 덩실덩실 춤추며 지나갔던 꼬불꼬불 휘어진 돌담길과 황톳길이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놓은 듯 했다. 검푸른 바다를 앞에 두고 보리밭 옆으로 유채꽃이 만연하다. 지난겨울을 이미 잊어버린 유채꽃은 봄의 한가운데에서 환한 꽃봉오리를 보이며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본격적인 봄향기의 유혹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듯 하다. 이른 봄기운에 흠뻑 젖은 완도와 청산도에서 마음 가득 쉼을 얻고 돌아서는 길, 봄에 대한 그리움에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