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추웠던 어느 날, 일찍 잠에 들었는데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후배 전화에 잠을 깼다.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하면서 중요 직책까지 맡아 꽤 힘들어했던 것이 떠올라 후다닥 전화를 받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뭔 일이 있나?” 내 걱정을 뚫고 나온 그녀의 목소리는 어찌나 밝고 우렁차던지 이내 함께 즐거워할 준비를 하고 또 물었다. “어쩐 일이고?”
그간 있었던 힘든 일들을 덮고도 남을 만큼 그녀를 밝게 만들었던 건, 최근에 어떤 회의에서 다시 뵙게 된 옛 스승 때문이라고 했다. 복잡하게 산재해있던 일들을 티 안 나게, 그리고 합리적으로 정리해주시고 구석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세심하게 배려하셔서 일을 하는 것이 참 즐겁고 복되다는 생각을 오랜만에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에 대한 짐은 스스로 짊어지고 가야하는 것이지만 내면 깊숙이 묻혀있기만 했던 그 환희심과 열정이 뭉글뭉글 피어올랐다고 했다. 그리고는 한바탕 즐거운 이야기를 풀어놓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후배가 수행을 위한 방랑생활을 1년 가까이 하다가 멈추고 경주에 들른 적이 있다. 그 여정이 순탄치 않았음을 알았지만, 크게 위로도 격려도 해주지 못하고 돌려보냈다. 그리고 한 달 후 경주를 다시 찾은 그는 이미 지난 일을 털어버리고 앞으로의 자신의 삶에 대해 큰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옛 스승을 뵙고 나서 그 복잡했던 생각들이 순식간에 정리가 되고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나가고 싶다는 희망이 생겼다고 했다.
이 두 후배에게 각각 열정과 희망을 다시 품을 수 있도록 한 스승은 같은 분이시다. 개인적으로 내가 참 존경하는 분이라 그 후배들의 반응에 기쁘기도 하고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태국에 있을 때에도 학술대회에서 처음 만나게 된 한국학자들이 그 분의 학식과 인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존경하는 분에 대해 여러 곳에서 여러 사람들이 그 훌륭함을 증언해줄 때 그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참된 분들의 명성은 어디서든 알려지고 들려지게 마련이다.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법구경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na pupphagandho paṭivātam eti
나 뿝파간도 빠띠와땀 에띠
na candanaṃ tagaramallikā vā
나 짠다낭 따가라말리까 와
satañ ca gandho paṭivātam eti
사딴 짜 간도 빠띠와땀 에띠
sabbā disā sappuriso pavāti. ①
쌉바 디싸 싸뿌리쏘 빠와띠 꽃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가지 않는다.
백단이나 따가라, 또는 재스민 향기도 그렇다. 그러나 참된 이들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간다.
참된 사람은 모든 방향으로 향기를 퍼뜨린다. ② 《법구경 54》 위의 시는 법구경 제4장 ‘꽃(Puppha)’편의 시이다. 꽃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가지 않지만, 참된 분들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모든 방향으로 알려지게 마련이다. 참된 분들의 참됨의 위엄과 명성에 대한 내용을 담은 법구경 시를 하나 더 소개하겠다. dūre santo pakāsenti himavanto va pabbato,
두레 싼또 빠까쎈띠 히마완또 와 빱바또
asant\'ettha na dissanti rattikhittā yathā sarā. ③
아싼뗏타 나 디싼띠 랏띠킷따 야타 사라 참된 이들은 히말라야 산처럼 멀리서도 빛난다.
참되지 않은 자들은 밤에 쏘아진 화살처럼 가까이서도 보이지 않는다. ④ 《법구경 304》 위의 시는 법구경 제21장 ‘여러 가지(Pakiṇṇaka)’편의 시이다. 참된 분들의 학식, 인품, 위엄, 명성 등은 그들이 어디에 있든 히말라야 산처럼 멀리서도 빛날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을 감화시킬 힘도 있게 마련이다.
화려하지만 껍데기만 있는 명성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 참됨의 힘이 참되게 가닿아 정직하게 힘이 발휘되어 각각의 사람들이 그를 소중하게 기억하게 되는 것, 그것이 참된 명성이 아닐까... 바람을 거슬러 모든 방향으로 향기를 퍼뜨리는 참된 사람, 히말라야 산처럼 멀리서도 빛나는 참된 사람, 그런 사람을 내가 알고 있어 행복하고, 그 분 또한 부처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이라 더 고맙다. 조금이라도 그 참됨을 닮고 싶어 노력하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 참 많아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4월, 부르지 않아도 오는 봄처럼, 그렇게 참된 사람들 가까이에, 오라하지 않아도, 가닿아 있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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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na: ~아니다. pupphagandho: 꽃향기는. paṭivātam=paṭivātaṃ: 바람을 거슬러. eti: 간다. candanaṃ: 백단이. tagaramallikā: 따가라와 재스민이. vā: 또는. satañ=sataṃ: 참된 이들의. ca: 그러나. gandho: 향기는. sabbā: 모든. disā: 방향으로. sappuriso: 참된 사람은. pavāti: 퍼진다.
②화향불역풍花香不逆風 부용전단향芙蓉栴檀香 덕향역풍훈德香逆風薰 덕인편문향德人徧聞香 (한역법구경). ③ dūre: 멀리서. santo: 참된 이들은. pakāsenti: 보인다, 빛난다. himavanto: 눈으로 덮인, 히말라야. va: ~처럼. pabbato: 산. asanto: 참되지 않은 자들은. ettha: 여기서. na: ~아니다. dissanti: 보인다. rattikhittā: 밤에 던져진. yathā: ~처럼. sarā: 화살들. ④근도명현近道名顯 여고산설如高山雪 원도암매遠道闇昧 여야발전如夜發箭 (한역법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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